李대통령 “與 양보만… 원내 지도부 기대 못미쳐”

  • 입력 2008년 8월 2일 02시 57분


홍준표 질책… 與 일각 “洪, 야당 앞에만 서면 작아져”

민주 “院구성 결렬 세게 나갈건데 洪 보호차원서 참아”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타결 직전에 무산됐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18대 국회 원 구성에 관한 잠정 합의안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것으로 1일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협상안을 보고받은 뒤 “계속 명분 없이 야당에 양보만 하면 여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며 “한나라당의 새 원내 지도부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기대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대목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전했다.

쇠고기국정조사특위 증인에서 여권이 요구한 ‘PD수첩’ 및 노무현 정부 관계자가 빠진 데 이어 원 구성 협상에서 민주당에 법제사법위원장까지 내준 데 대한 질책인 셈이다.

이 대통령의 비판은 특히 홍준표 원내대표에게 집중된 것이라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홍 원내대표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협상안을 받아 놓고 정작 논란이 되자 청와대를 문제 삼은 데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청와대에는 이번 협상을 계기로 홍 원내대표 특유의 ‘집안 총질’식 비판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적지 않은 편이다. 여권 내부에서 조율도 안 된 사안에 대해 ‘통 크게’ 야당에 양보부터 해놓고, 문제가 되면 오히려 여권 내부에 비판의 화살을 돌린다는 것이다.

홍 원내대표는 당내에서도 집중 포화를 맞으면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

1일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는 임태희 정책위의장과 안경률 사무총장 등이 잇따라 “민주당에 너무 많이 양보했다. 법사위원장 기능을 제한하는 장치 없이 통째로 야당에 넘겨준 것은 문제다”라고 지적했다는 후문이다. 이들은 또 “어제 TV에서 원 구성 협상 결렬 소식을 전하는 홍 원내대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청와대에 책임을 돌릴 수 있는가”라고 질타했다.

당 일각에서는 “그래서야 원내대표 임기(1년)를 마칠 수 있겠느냐”는 냉소적 반응도 나온다.

한 의원은 “172석의 거대 의석을 갖고 있는 여당 원내대표가 민주당에 법사위원장까지 통째로 내줄 거면 지금까지 원 구성 합의를 왜 끝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홍 원내대표가 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에게서 후원금 500만 원을 받은 것에 대해 민주당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이후 “야당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지난달 31일 원 구성 협상 결렬 후 “홍 원내대표가 참 많이 양보했고 국회 정상화를 위해 많은 애를 썼다”고 두둔하고 나섰다.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는 “홍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통화한 후 사색이 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며 “앞으로 원내대표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당 차원에서 더 세게 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를 보호하자는 생각에서 참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 영상 취재 : 박경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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