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정권교체답지 않은 교체 위해 물러날 생각 없다”

  • 입력 2007년 12월 3일 03시 03분


코멘트
《“내가 국민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1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단암빌딩 21층 캠프 사무실에서 있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두 번 대선의 패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토로했다. 이 후보는 “지난 두 번 대선에는 돈도 세력도 조직도 있었다. 그만한 조직과 세력이 없었어도 국민의 마음을 얻었다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 대통령이 되면 임기 초에 ‘국가개조위원회’나 ‘국가개조기획단’ 같은 기구를 만들어 권력구조 등 개헌 문제를 연구하도록 할 것”이라며 “앞으로 50년을 내다본 큰 구조의 변화나 대개혁을 위해 대통령중심제나 내각책임제, 이원집정부제 등 여러 권력구조의 형태가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인터뷰에서 ‘출마 선언 때 정권 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오면 살신성인하겠다고 했는데 요즘 경선 완주를 강조하는 것은 말이 바뀐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정권 교체답지 않은 정권 교체를 위해 중간에 물러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7일 대선 출마 선언 때 “정권 교체를 위해 이 길밖에 없다는 상황이 올 때는 살신성인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본보는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에게도 인터뷰를 신청했다. 성사되는 대로 게재할 예정이다. 다음은 이회창 후보와의 일문일답.》

○ 공공질서 파괴는 ‘공공의 적’

―최근 국가대개조전략을 내세우며 ‘강소국 연방제’를 주창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20년간 체제를 민주화의 시대라고 말한다면 앞으로 50년은 선진화시대로서 새로운 구상과 국가 개조, 즉 법적 제도적 측면과 정치적 이념적 측면의 두 방면에서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구상해서 만들어 가야 한다. 나라 전체를 5, 6개 권역으로 나눠 각 권역을 싱가포르 핀란드처럼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의 기능과 조직을 대개혁해야 한다. 강원도 하면 관광이나 목축으로 스위스 같은 훌륭한 단위국가적인 지역발전을 할 여지가 많다. 충청권과 호남을 생각하면 서해안시대 발전기지의 가능성이 크다. 강소국인 싱가포르 핀란드 홍콩 사람들보다 우리가 더 우수하고 뛰어나지만 정치가 부족해 그런 여건과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현재의 대통령제 권력구조에서 가능한 일인가.

“물론 현재의 헌법 제도나 국가기구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 단 개헌 전에 현 헌법하에서 기초적인 작업과 실천 계획을 어디까지 추진할 수 있을지 봐야 한다.”

―출마 선언 때 길 막고 벌이는 무분별한 시위 등을 엄단하겠다고 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데 법질서를 바로 세울 구체적인 방안은….

“지도자의 철학과 이념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까지 법에 의한 지배를 제대로 못한 것은 (지도자가) 자꾸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기울었기 때문이다. 우선 법과 원칙을 제대로 지키는 게 당연하게 생각되도록 사회적 컨센서스를 이뤄야 한다. 그 과정에서 현실로 나타나는 법 위반과 파괴행위, 특히 사회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행동은 사회 방위라는 면에서 보면 ‘공공의 적’이다. 그 부분에 공정한 법 집행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국가, 정부, 대통령이 할 일이다.”

―이번 대선의 화두가 경제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미국같이 우리보다 훨씬 경제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도 선거 때가 되면 제일 관심사는 경제로 간다. 그러나 막판에 가면 가치의 문제로 돌아간다. 우리 국민도 선택의 단계에서는 가치의 문제로 돌아갈 것이다. 경제는 토대가 있어야 한다. 시장엔 룰과 법치가 있다. 그게 지켜지지 않으면 약육강식이 된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을 경제대통령이라고 말하지만 더 유능한 CEO들이 맘껏 뛰게 해서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고 CEO나 기업이 룰을 어기고 부패하는 것을 막는 게 대통령이 할 일이다. 경제 전문가는 많다.”

○ 김 전 대통령의 정계 은퇴 번복과 나는 달라

―처음 출마 선언할 때 ‘정권 교체가 힘들어지면 살신성인하겠다’고 했는데….

“정권 교체다운 정권 교체를 위해선 나를 버릴 수 있다는 의미였다. 내가 나오면서 제 개인의 명예와 자존심을 버렸는데 필요하다면 모든 걸 버릴 수 있다는 거다. 그 얘기가 나오니까 지지율이 올라가다 멈추면 ‘언제 물러날 거냐’고 묻는다. 그래서 정권 교체다운 정권 교체를 위해 나왔으니까 중간에 전장에서 이탈할 생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정권 교체다운 정권 교체가 아니라 정권 교체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온다면….

“그런 상황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지율이 정체돼 있는데, BBK 주가조작 사건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나.

“국민은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무조건 모 후보 쪽으로 가지 않는다. 의혹이 사실이라고 해도 ‘한 방’으로 후보를 보낼 정도는 아니다. 현재는 지지율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민께 왜 제대로 된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하는가를 설득하면 (지지율이 올라갈)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 은퇴 번복과 이인제 전 경기지사의 경선 불복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도 정계 은퇴 번복과 사실상 경선 불복한 것이 아닌가. 김 전 대통령의 정계 은퇴 번복에 대해서는 ‘청소년 교육에 합당한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는데….

“김 전 대통령은 떠난다고 할 때부터 ‘완전히 떠날 생각이 아니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얼마 안 돼 정계 복귀를 했다. 나는 완전히 떠나 있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나왔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과 (저를) 비교하는 것은 불만이다. 이인제 씨의 경우는 (내가 경선에 출마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 안 드려도 잘 알 테니 말하지 않겠다.”

○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 돕는 것으로 결론 났다고 볼 수 없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명박 후보 지원유세를 벌이고 있다. 박 전 대표와의 연대는 물 건너갔나.

“그렇게까지 볼 필요 없다. 정치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어차피 강물은 흘러 바다에서 만난다. 생각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면 큰 바다에서 만나게 돼 있다.”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와의 연대 논의는….

“심 후보는 이른바 ‘클린(clean) 정치인’이다. ‘클린 보수’라고 하는 그분의 말이 꽤 설득력이 있다.”

―삼성 특검에서 2002년 대선자금 수사를 할 예정인데 당시 수사가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다, 특히 대선자금 사용처인 ‘출구’ 조사가….

“검찰이 굉장히 집중적으로 조사해 밝힐 만큼 밝혀졌다. 대선잔금 부분도 조사될 만큼 됐다. 자금의 ‘출구’ 조사는 어느 정도 됐는지 모르겠다.”

―당시 ‘감옥에 가겠다’고 검찰에 출두한 뒤 ‘나는 잘 모른다’고 진술했다는 얘기가 있다.

“터무니없다. ‘내가 대장인데 전쟁터에서 생긴 일은 내가 알든 모르든 내가 시켰다, 그 책임을 내가 지겠다’고 분명하게 얘기했다.”

○ 대북 문제 원칙과 철학이 분명해야

―이 후보의 출마 명분 중 중요한 것이 한나라당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대북정책과 이 후보의 것이 별 차이 없는 것 아닌가.

“한나라당이 처음엔 ‘한반도 평화비전’을 당론으로 할 것처럼 해 놓고 보수 진영에서 공격하니까 슬며시 평화비전이 채택되지 않은 것처럼 얘기했다. 바로 이게 중요한 것이다. 대북 문제는 원칙과 철학이 분명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말을 쏟아내도 필요에 따라 움직이면 포퓰리즘밖에 안 된다.”

―이념적으로 이명박 후보보다 더 우측에 가 있다는 시각도 많다. 대선에 승리하려면 중원(中原), 즉 중도세력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주 우측에 놓는 것은 매우 부적합하다. 북한이 핵폭탄을 가지고 있어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북한에 대한 대규모 협력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북한의 체제를 개혁, 개방하고 핵문제를 걱정하게 되지 않는다면 좋은 것이다. 그런 방향의 변화를 시도하는 남북관계 증진 및 확대가 저의 대북정책 기조다. 그것은 진정한 공존, 평화를 위해 가장 유효적절하고 실용적인 자세에 있는 것이지 우측에 있는 게 아니다.”

―외연을 확대하기 위한 작업에서 흠결이 있는 인사들이 캠프에 합류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정당이나 사람 중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박제균 기자 phark@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촬영 : 신원건 기자


촬영 : 신원건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