昌 출마설…정치권-학계, 한국정치 근본적 문제 제기

  • 입력 2007년 11월 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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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문 열까대선 출마설로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1일 오찬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이종승 기자
대선 문 열까
대선 출마설로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1일 오찬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이종승 기자
후보등록 3주앞 본선 무임승차…정책-정당정치 실종 위기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3수’가 ‘설’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한국 정치의 근본적 문제점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초 불출마 선언을 한 이 전 총재가 이명박-박근혜 양강 구도로 치러진 경선에서 ‘관중’으로 있다가 승패가 정해지자 링 위로 뛰어올라 ‘무임승차’를 하려 하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말 실시한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이 후보는 40.7%, 박 전 대표는 19.3%였으나 이 전 총재는 3.9%에 불과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전 총재가 출마할 경우 이 후보와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은 각각 40%와 20% 안팎으로 나온다. 경선 당시 이 후보와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대략 40%와 20%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전 총재가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을 상당 부분 넘겨받게 되는 셈이다.

범여권에서는 뒤늦게 대선 판에 뛰어든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을 이 전 총재에 빗대 얘기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정치권과 학계 안팎에서는 한국 정치 구조가 그만큼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책 검증 실종=이명박 대선 후보는 서울시장 때부터 정책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다른 주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놓는 정책이 많지만 아직도 세부정책을 발표하지 않은 분야도 있다.

오랫동안 준비했다는 지지율 1위 후보가 이 정도인데 선거를 40여 일 앞두고 이 전 총재가 출마를 선언한다면 정책은 ‘보나 마나’라는 지적이 많다. 차기 정권을 이끌 비전과 정책을 급조할 수밖에 없고, 더구나 이에 대한 검증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 전 총재를 도왔던 한 인사는 “선거를 치르기 위한 조직 구성조차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에 정책 개발이나 이에 대한 검증이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한 당직자는 “정책들을 만들어 낸다 해도 충분한 내부 검토와 검증 없는 ‘졸작’이 될 게 뻔하다”고 혹평했다.

‘공약 급조’ 및 검증 시간 부족은 문 전 사장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강원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제에서 지도력 리더십에 대한 의존이 크다 보니 대선에서 정책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간과되는 것 같다”면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아 집권한 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많이 지불했다”고 강조했다.


촬영 : 이종승 기자

▽정당보다는 개인의 지지율에 휘둘리는 구조=이 전 총재의 대선 3수 움직임은 한국 정치의 취약한 정당구조를 반영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선 후보가 정당보다 인물, 지지율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당정치 역사는 반세기가 지났지만 정당은 여전히 뿌리를 못 내린 채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급조된 정치단체’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대선에서는 정당 중심이 아닌 인물 중심으로 이합집산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특히 아직도 당원 신분을 유지하는 이 전 총재가 두 번이나 대선 후보로 나선 한나라당과 관계없이, 후보 등록까지 3주가량 남은 상황에서 출마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정당정치를 피폐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한나라당은 10년 전 이맘때 이 전 총재가 대선 후보로 있으면서 신한국당을 개명해 만든 당이다.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의 정당들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전달하고 대변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과거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의 욕심에 따라 이런 취약한 제도를 악용했고 결국 오늘날 이 전 총재의 출마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선 불복의 상례화?=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 움직임을 두고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경선 불복’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 의원의 경선 불복과 독자 대선 출마로 대선에서 석패했던 이 전 총재가 이번엔 본인이 이인제 의원의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꼴이라는 것이다. 이인제 의원조차 “이 전 총재가 출마하는 것은 나보다 죄질이 나쁜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전 총재가 출마한다면 박 전 대표가 출마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한 또 다른 경선 불복”이라며 “지난 대선에서 벌어진 경선 불복을 막기 위해 경선에 진 후보는 그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했는데 이 전 총재는 이 법을 역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정치인은 “이 전 총재가 출마하겠다는 것은 다른 후보들이 당내 경선을 거쳐 ‘대선 마라톤’을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결승점 직전에 끼어드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명분 없는 ‘스페어 후보론’과 후진적 네거티브 의존=이 전 총재는 “좌파정권 종식과 정권교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칙론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전 총재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일부 인사 가운데는 ‘이 후보의 낙마에 대비하기 위해 보수진영에 복수 후보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의 한 측근은 “같은 당에 후보가 버젓이 있는데 ‘죽을 것을 대비해 내가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명분도 없고, 인간의 도의에도 맞지 않는 억지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이 전 총재가 네거티브의 피해자인데 어떻게 또 다른 네거티브에 자신의 출마를 의탁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했다.

MBC-SBS 여론조사
-이회창불출마 시(%)이회창출마 시(%)이회창출마여부(%)
이명박정동영 이명박 이회창정동영찬성반대
MBC-코리아리서치52.8 16.1 40.3 22.4 13.1 37.955.8
SBS-TNS코리아49.717.538.719.117.136.355.1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昌측 “내주중 출마여부 선언” 李측 “대선 잔금 용처 밝혀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설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측근들이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 선언 준비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이 이 전 총재를 공격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이 전 총재를 잘 아는 한 인사는 1일 “이 전 총재가 6, 7일경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안다”면서 “이미 과거의 조직들을 다시 꾸리기 위해 실무그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이 전 총재가 해외에 나가 있는 자신의 측근 인사들도 불러들였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 전 총재의 측근인 이흥주 특보는 1일 통화에서 “국민의 관심도 크고 여러 정치 일정을 볼 때 무한정 고민만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내주 중 이 전 총재가 모든 것을 정리해 대국민성명 형식으로 국민에게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의 총괄본부장인 이방호 사무총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전 총재가 대선 패배 후 ‘내가 국민에게 죄인이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이 전 총재가 출마를 하려면 2002년 대선 당시의 대선 잔금 사용 명세부터 밝혀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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