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기홍]북핵시설 현장 방문 왜 한국만 매번 빠지나

  • 입력 2007년 9월 1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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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여 동안 인터뷰한 미국의 북한 핵문제 전문가들 중엔 전문성과 통찰력이 인상적인 사람이 여러 명 있었다. 특히 로스앨러모스 국립핵연구소 소장을 지낸 시그프리트 해커 박사와 이름을 공개할 수 없는 두 명의 민간연구소 연구원이 기억난다.

이들의 공통점은 최근 몇 년간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선 자료와 2차 정보에만 의존하는 전문가들에게선 찾을 수 없는 ‘현장의 힘’이 느껴진다. ‘현장’은 비단 기자나 범죄감식반에만 중요한 게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미국 중국 러시아 3개국 전문가들이 북한의 초청으로 12, 13일 영변 핵시설을 방문한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북한은 원자로 등 핵심 시설의 설계도면까지 보여 줬다는 게 한국 정부의 설명이다. 핵시설 불능화 진전을 위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이번에도 현장에 한국의 전문가는 없었다는 점이다. 2002년 제2차 북핵 위기, 더 거슬러 올라가 1990년대 핵 위기를 촉발한 이래 북한은 한국을 핵 문제의 직접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아 왔다. 한국은 오로지 핵문제 진전에 상응한 경제적 보상 논의에서만 주역으로 대우받아 왔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러시아와 중국은 핵 보유국이어서 그 분야 전문가니까 포함시킨 것으로 이해한다”며 “경제 에너지 지원이라면 우리가 경험이 많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정상회담 의제로) 북핵, 북핵이라고 소리를 높이는 것은 정략적인 의미로 얘기한 것이라고 평가한다”며 “이미 6자회담에서 풀려 가고 있는데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북핵을 말하라는 건 가급적 가서 싸움하라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 중 뒷부분에는 어쩌면 현재의 남북관계에서 한국 정부가 처해 있는 현실이 정확히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여러 차례 방문한 핵시설을 정작 핵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에선 아무도 가 보지 못한 채, 핵문제를 제기하면 싸움이 될까 봐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현 정권 스스로 초래한 게 아닐까.

기자는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 발표 후 20명 남짓한 미국 전문가와 인터뷰를 했다. 진보 보수를 망라한 그들 중 핵문제가 정상회담의 제1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도 무슨 정략적 이해관계 때문에 그랬을까.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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