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수진]靑 ‘취재봉쇄’이제는 경찰에 책임 떠넘기기

  • 입력 2007년 8월 2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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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이 단추를 잘못 뀄더라. 서울경찰청이 경찰 조직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아 ‘특수성을 감안해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2일 기사송고실과 브리핑룸 통폐합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과 관련해 경찰이 보여 준 ‘과잉충성’을 문제 삼았다.

이 관계자는 “경찰은 정책기관이 아닌 집행기관인데도 서울경찰청이 조직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안을 내놔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14일 전화·면담 취재 때 지방경찰청 홍보관리관실을 반드시 거치고, 허락을 받더라도 기사송고실 옆 접견실에서만 만나도록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찰에 대한 직접 취재를 봉쇄한 것.

경찰은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20일 형사계, 교통사고조사계, 민원실 등 민원인이 출입하는 곳에 기자도 출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수정안을 내놨다.

이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 지침을 내려보냈더니 경찰이 ‘알아서 기는’ 식으로 너무 앞서 나갔고, 이에 청와대와 국정홍보처는 ‘지시한 대로만 하라’고 질책해 방침이 수정된 것이다. 게다가 물의를 일으킨 지침은 경찰청이 아닌 하급기관인 서울경찰청이 작성했다는 것이어서 월권(越權) 의혹도 제기된다.

경찰은 펄쩍 뛰었다. 경찰이 어떻게 청와대나 국정홍보처 같은 ‘상급기관’의 지시보다 진일보한 보도지침을 만들 수 있고, 서울경찰청이 어떻게 경찰청을 제쳐 놓고 자체안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는 것.

경찰의 한 간부는 “관리기관인 경찰청이 수사기관인 서울경찰청에 경찰청안을 주면서 ‘검토해 봐라’고만 한 것으로 안다”며 “국정홍보처 지침이 전화·면담 취재 때 홍보관실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상급기관의 지침에 너무 충실했던 게 죄라면 죄”라고 억울해했다. 다른 간부는 “경찰이 오버한다는 비판여론이 형성되니까 그 책임을 ‘힘 없는’ 경찰에 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실에 대못질하겠다고 공언하자 심복(心腹)들은 각 부처에 ‘대못질 세부 방안’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세계에 유례없는 기자실 대못질을 ‘선진화’란 미명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다가 문제가 되자 청와대와 경찰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 안쓰럽다.

조수진 정치부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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