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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4월 3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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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인 코피 아난과는 달리 반 총장에겐 몇 개월의 밀월 기간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인으로서 곤혹스러움마저 느낀다. 반 총장이 취임 초부터 착수한 개혁 조치는 입후보 시 내놓은 ‘유엔에 대한 신뢰 회복’과 ‘사무국 개혁’이라는 공약에서 충분히 예견됐다. 시비의 대상이 된 이유는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후반기에 시작된 일련의 사태와 깊은 관계가 있다.
미국의 이라크전쟁과 코피 아난의 미국 비판, ‘식량과 석유 교환 계획’에 관련된 유엔 고위직의 독직 스캔들,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의 무리한 개혁 드라이브로 악화된 개도국과 선진국 간의 긴장이 유엔 회원국 간, 회원국과 사무국 간, 또 사무총장과 언론 사이에 불신과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연간 50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방만하게 사용하는 평화유지 부서를 2개국으로 개편하고 군축국을 축소하는 반 총장의 구조조정이 개도국의 완강한 반대에 직면했던 이유도 이런 불신 때문이었다.
반 총장이 2월 초 아프리카 순방에서 귀임한 후 77그룹 국가를 직접 설득하고 이집트와 아르헨티나 등이 협력하면서 타협안이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돼 반 총장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사무국 직원들은 오랫동안 정체된 문화에 익숙해져 어떤 변화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는데 특히 고위 정무직의 사표 제출과 재산 공개 요구는 유무형의 저항을 자아냈다. 한국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재산 공개는 고위직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조함으로써 사무국 직원의 윤리 의식과 도덕 기준을 강화하려는 첫 번째 개혁 조치여서 회원국과 언론에서 높이 평가했다.
반 총장이 짧은 기간에 이룩한 또 하나의 귀중한 성과는 아프리카 순방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에 관심이 깊은 사무총장의 이미지를 부각했다는 점이다. 신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라크를 방문해 이라크 민주화에 대한 유엔의 지지를 확고히 했고, 다르푸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수단 대통령을 설득해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의 기반을 조성했다.
혜안을 갖고 시대를 앞질러 보았던 다그 함마르셸드, 도덕적인 권위와 카리스마가 있는 코피 아난, 독립적이고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는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후 세계적 인물로 성장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유엔 전문가는 반 총장 선출에 대해 “능력이 카리스마를 능가하고 실천이 말보다 중요하며 정치적 인기 스타보다 실용주의적 지도자를 선택한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반 총장이 탁월한 외교 역량과 친화력으로 전체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도층과 전례 없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제3세계와도 굳건한 유대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그의 개혁 드라이브는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걱정스럽게 반 총장의 근황을 묻는 사람들에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속담을 상기시키면서 전망이 밝다고 대답한다.
박수길 고려대 석좌교수·유엔한국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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