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명건]통일부 ‘나홀로 쌀지원’에 대북협상 혼란

  • 입력 2007년 4월 1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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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받아야만 움직이니까….”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9일 통일부가 지난주 ‘북한이 6자회담 2·13합의의 핵 시설 폐쇄(shutdown) 조치 이행 시한을 넘기더라도 대북(對北) 쌀 40만 t 지원을 예정대로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쌀 지원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끌어낼 동력이 될 것이란 의미다. 북한이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남북 철도 연결 등의 전향적인 조치를 취할 때 철저히 받은 만큼만 행동해 온 점에 비춰 보면 틀린 분석이 아니다.

미국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기 위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묶였던 북한 자금 중 대량살상무기(WMD) 거래로 번 것까지 모두 돌려주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통일부의 쌀 지원 방침 발표는 북핵 협상 전선에 혼란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통일부가 다른 정부 부처와 협의 없이 발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2·13합의에는 북한의 핵 시설 폐쇄 이행의 대가로 중유 5만 t을 지원하게 돼 있다. 정부는 현재 여수항에서 북한에 보낼 중유 선적을 준비 중이다. 이에 더해 북한은 비핵화 조치를 시작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BDA은행 동결 자금의 반환 약속까지 얻어냈다. 통일부의 쌀 지원은 여기에 한 상(床)을 더 차려 보내겠다는 것이다.

다른 부처의 한 당국자는 “이렇게 손발이 안 맞아서야 북한과 협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북한이 받는 만큼 행동하는 점을 염두에 뒀다면 쌀 지원은 핵 시설 폐쇄의 다음 단계인 불능화(disablement)나 핵 프로그램 신고를 끌어내는 지렛대로 썼어야 했다는 것이다.

통일부에선 쌀 지원 방침 발표가 10∼12일 금강산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용이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이 역시 군색한 변명일 뿐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4월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이 문제 해결의 대가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 대규모 지원 방침을 북측에 제시했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대북 퍼주기’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냉전 마인드’라고 반박했지만 더는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명건 정치부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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