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무관심… 개헌카드 ‘조건부 철회’ 포석?

  • 입력 2007년 3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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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왼쪽)이 8일 정부의 헌법 개정 시안 발표와 관련해 청와대 춘추관에서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8일 정부의 헌법 개정 시안 발표와 관련해 청와대 춘추관에서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8일 특별기자회견에서 각 정당이 ‘차기 대통령 임기 1년 단축’을 포함한 구체적인 개헌 공약을 제시하면 개헌 발의를 차기 정부로 넘길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개헌 추진이 벽에 막혀 있는 상황을 감안한 듯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2월 초로 예고됐던 개헌안 발의 시점이 벌써 한 달 이상 늦춰지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접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한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새 제안은 ‘퇴로 모색용’이 아니라 개헌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대선주자들을 향해 “개헌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차기 대통령 임기 1년 단축’이 싫기 때문 아니냐”는 주장을 제기함으로써 개헌 논란을 재점화하겠다는 것.

하지만 개헌 문제가 정치권의 현안으로 재부상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듯하다. 노 대통령의 이날 제안에 대해 열린우리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노 대통령의 이날 회견 문답 요지.

―(새 제안에 따른) 협상 시한은….

“관계된 정당이나 당사자들이 반응하는 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 반응도 없으면 더 기다릴 이유가 없다. 3월 중으로 가부간에 판단날 것이다.”

―대통령의 제안은 임기 내 개헌 가능성이 희박해짐에 따라 퇴로를 모색하려는 것 아닌가.

“나는 개헌 발의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개헌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타협을 해서라도 다음 정부에서 개헌을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다면 그건 차선이 된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드리는 것이다. 퇴로를 모색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개헌 발의 시점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정확한 발의 시점을 밝혀 달라.

“1월 9일 개헌 제안할 때 3월 초 정도면 충분히 공론이 수렴될 것으로 봤다. 그런데 논의 자체가 잘 일어나지도 않고 (일부 언론들도) 소방수 불 끄듯이 논의를 자꾸 끄고 있다. 시간이 있다, 없다고 하는데 1987년 우리가 개헌했는데 8, 9월경 발의해서 10월경 개헌이 이뤄지고 12월에 대통령선거를 했다. 4월에 발의해도 실질적인 결판은 국회의결 시한인 60일 안에 난다. 그 이후에 대통령 선거 두 번도 할 만한 시간이 충분하다.”

―각 당이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약속한다고 해도 그 이행을 누가 담보한단 말인가.

“당론을 결정해서 발표하면 뒤집기 어렵지 않겠느냐. 지금까지 개헌 주장이 많았지만 전부 개인적 발언이었다. 그러니까 움직일 수 없는 공약으로 하자는 것이다. (범여권에) 후보가 없다고 했는데 후보가 왜 없나. 앞으로도 후보가 나오고 지지도도 여러 번 엎치락뒤치락할 것이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 개헌 시안 내용 - 전문가 진단

정부가 8일 공개한 대통령 연임제 헌법 개정 시안은 대통령 궐위 시의 후속 조치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일치 및 동시선거 방안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임기 일치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대통령 궐위 시를 상정한 많은 경우의 수를 둬야 하는 등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후임자는 잔여 임기만=대통령 궐위로 선출된 후임 대통령이 또다시 4년 임기를 시작하면 국회의원 임기와 일치시키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당초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 보궐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의 임기는 전임자의 잔여 임기만을 채우도록 했다.

또 궐위 기간이 1년 미만이면 국무총리가 권한 대행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4년 대통령제에서 1년간의 대행체제를 일상적으로 상정하는 것은 직선 대통령제의 취지에 부합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또 궐위 기간이 1년 1개월일 경우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하지만 선거에 필요한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임기는 11개월여에 그치게 된다. 이 경우 유력 대통령 후보들은 차기 출마를 염두에 두고 출마를 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헌법재판소 연구원을 지낸 김종철(법학) 연세대 교수는 이날 한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오직 임기 주기의 일치를 위해 직선으로 선출된 대통령의 임기를 전임자의 잔여임기로 제한하는 것은 대통령 직선제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안은 대통령 권한 대행인 국무총리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국무총리직을 사임할 경우 경제부총리가 다시 권한 대행을 하도록 했다.

▽여론 수렴으로 결정?=정부는 임기 일치 및 동시 선거를 위해 선거의 시기와 방식을 놓고 3개안을 제시했다. 새 헌법에 따른 대선과 총선을 2008년 2월이나 2012년 2월에 동시에 실시하는 안, 2012년 1월에 대선, 2월에 총선을 실시하는 안이다.

국민 공청회 등을 열어 각각의 장단점을 설명하고 국회 처리 절차에 들어가자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헌법학자인 허영 명지대 교수는 “개헌안은 고도의 전문적이고 헌법 이론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한두 번의 공청회를 듣고 찬반을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라며 “왜 헌법 개정을 이런 식으로 불쑥 던져 평지풍파를 일으키는지 매우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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