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노무현의 길, 시라크의 길

  • 입력 2007년 1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연초부터 개헌과 대선의 소용돌이에 빠져 헤매는 한국에 지도처럼 요긴한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개헌을 우리보다 앞서 단행했고 대선도 우리처럼 올해 치른다. 프랑스의 개헌 역사를 탐구하고 대선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수용하거나 피해야 할 잘잘못이 드러나고, 배워도 좋을 교훈이 떠오른다.

개헌, 프랑스 모델을 보라

프랑스의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은 자크 시라크 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였던 2000년 9월에 이루어졌다. 개헌 이유가 요즘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하는 논리와 신기하게도 똑같다. 대통령 임기를 줄여 국회의원 임기와 같게 해 동일한 주기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여소야대로 인한 국정 혼란을 피하고 너무 긴 대통령 임기도 단축해야 한다는 프랑스 개헌론자들의 설명을 번역하면 청와대 측 주장과 엇비슷해진다.

개헌 전 프랑스의 대통령 임기는 7년이었다. 재선에 성공하면 14년을 대통령으로 재임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프랑수아 미테랑이 재선에 성공했고 시라크도 개헌을 하지 않았다면 14년을 엘리제궁에서 지낼 뻔했다. 조르주 퐁피두와 미테랑은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14년은 너무 길어”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프랑스는 어떻게 7년 임기에서 벗어났을까. 기나긴 고민과 논의 그리고 타협의 산물이었다. 결코 대통령의 ‘1인 투쟁’이 얻어 낸 성과가 아니다. 프랑스에서 대통령 임기가 7년으로 정해진 것은 1873년. 7년 임기는 3, 4, 5공화국을 거치면서 그대로 이어졌고 선출 방식만 간선에서 국민의 직접선거로 바뀌었다(1962년 직선제 개헌).

물론 여러 차례 임기 단축 개헌 시도가 있었다. 1970년대 초 퐁피두가 개헌안을 발의했고 미테랑은 1992년 특별 기구를 만들어 개헌을 추진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한 대목이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은 자신의 개헌 계획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미련 없이 포기했다. 퐁피두는 개헌안이 하원과 상원을 통과했지만 마지막 관문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얻을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꿈을 접었다. 미테랑도 국민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1990년대 말 세 번째 동거정부(코아비타시옹·좌파 대통령과 우파 총리 또는 우파 대통령과 좌파 총리가 이끄는 정부)를 겪으면서 개헌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인식이 크게 변했다. 이를 간파하고 2000년 5월 개헌안을 하원에 상정한 사람이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이다.

2년 뒤로 다가온 대선에서도 승리해 또 한번의 7년 임기를 기대하던 시라크는 처음엔 개헌에 반대했다. 그러나 개헌 지지 여론이 확실해지고 하원과 상원에서 개헌안이 압도적인 지지로 가결되자 생각을 바꿨다. 상원 표결 일주일 뒤 시라크는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회부하기로 결정했고, 73.21%의 찬성으로 프랑스 대통령 임기는 무려 127년 만에 5년으로 단축됐다.

국민이 가는 길로 가야

시라크는 노회한 정치인이다. 최대 야당인 사회당과 집권당의 후보가 결정됐지만 대선을 3개월 앞둔 지금까지 본인의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출마 가능성은 거의 없으나 레임덕 현상을 최대한 막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정치 술수에 능한 시라크지만 개헌 문제에 관해서는 국민의 뜻을 존중해 소신을 버렸다. 결과적으로 시라크의 길은 프랑스 국민의 길이 돼 해피엔드로 개헌을 마무리했다. 임기 말, 대선 정국에 개헌 카드를 꺼내 든 노 대통령도 시라크 못지않은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가 가려는 길은 개헌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적기(適期)가 아니라는 다수 국민의 뜻에 배치된다. 이것이 한국과 프랑스 지도자의 차이다. 국민은 이 차이를 잘 헤아려야 한다.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 hnbh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