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신년 공동사설 “먹는 문제 최우선 해결”…경제난 반영

  • 입력 200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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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일 발표한 신년 공동사설은 경제발전 강조와 민족 중시 및 남한 내 ‘반보수 대연합’ 실현 촉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핵실험을 통해 핵을 보유한 군사강국이 된 것을 강조하면서도 200자 원고지 90여 장 분량의 신년 공동사설의 4분의 1가량을 주민생활 향상 등 경제 문제에 할애했다. 이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가중되고 있는 경제난의 증거라는 분석이 있다. 예년과 달리 군사 문제에 앞서 경제 문제를 먼저 언급한 것이나 ‘승리의 신심 드높이 선군조선의 일대 전성기를 열어 나가자’라는 공동사설 제목 역시 경제발전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민족 중시’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함과 동시에 올해 12월 대선을 겨냥해 ‘남한 내 반보수 대연합’ 실현을 촉구하며 남측의 정권 교체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을 내비쳤다.》

北신년 공동사설 주요내용-의미

▽경제가 최우선 과제=사설에서 북한은 “경제 문제를 푸는 데 국가적 힘을 집중해야 한다”며 주민생활 향상과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이 이처럼 경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은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최악의 경제난을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핵보유국이 됐음을 강조하며 체제 결속에 나서고 있으나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주민들의 동요와 사회 불안이 가중돼 북한 체제가 또다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북한 당국의 우려가 담겨 있다는 것.

실제 북한은 지난해 150만 명의 이재민을 낳은 심각한 홍수 피해 등으로 200만∼300만 t의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경제 지원이 어려워지면서 1990년대 중반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고난의 행군’이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사설에서 농업 생산력 향상, 산업시설 현대화 등을 촉구함과 동시에 경제 분야의 ‘자력갱생’을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또 사설은 “선군의 기치를 높게 들고 국방력 강화에 계속 힘을 넣어야 한다”며 체제 안정을 위해 선군정치에 힘을 쏟는 한편 주민들에 대한 사상 통제를 강화해 나갈 것임을 내비쳤다.

통일부 당국자는 “경제 문제가 군사 문제보다 앞서 가장 먼저 언급됐다는 점에서 이제 핵무기를 보유한 만큼 식량 문제 등 어려운 주민 생활에 더 신경을 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족 중시’와 남한 내 ‘반보수 대연합’ 실현=북한이 사설에서 밝힌 대남정책의 초점은 ‘민족 중시’와 대선을 앞둔 ‘남한 내 반보수 대연합’ 실현.

한나라당을 ‘매국적인 친미반동 보수세력’으로 규정하고 ‘남한 내 반보수 대연합을 실현해 올해 대선을 계기로 한나라당을 매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대북 지원과 남북 교류를 통한 경제적 실리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남조선의 친미보수 세력은 6·15통일시대를 과거의 대결시대로 되돌려 집권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북한은“민족 중시는 외세에 의해 분열과 전쟁을 강요당하고 있는 우리 겨레가 견지해야 할 좌우명”이라며 “(남북은)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각 통일운동단체의 연대를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경제 발전에 이어 민족 중시를 강조함에 따라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정체된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공동사설에서 경제 발전을 위해 제시한 먹는 문제 해결과 경공업 혁명, 전력과 철도운수 부문 등 4대 선행 부문 발전을 위해서는 쌀과 비료 지원이나 8000만 달러 규모의 경공업 원자재 지원, 200만 kW의 대북 송전 등 남측이 약속한 대북지원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핵(核) 해결 언급 없어=북한은 올해 사설에서 핵 보유에 대한 자부심을 내세웠지만 6자회담 등 핵 문제와 관련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6자회담과 방코델타아시아(BDA) 실무회의 등 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이 진행 중임을 감안해 핵 문제 해결에 대한 북측의 방침을 감추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사설에서 “핵 억제력 보유는 민족사적 경사”, “전쟁 억제력이 동북아 평화와 안전 수호의 강력한 힘”이라며 핵 보유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을 두고 북한이 앞으로의 협상 과정에서도 핵보유국 지위를 내세우는 강경한 태도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며 강조해 온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 준다는 평가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핵문제와 비핵화 관련 언급을 자제하고 핵 보유의 정당성을 강조한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볼 때 북한은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도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신년 공동사설: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은 한 해의 정책 방향과 주요 사업과제를 제시하는 공식 신년사에 해당한다. 공동사설은 주로 지난해 결산으로 시작해 정치 경제 남북관계 대외관계 부문 등으로 구성된다. 북한은 1946년 김일성 주석 연설을 통해 신년사를 발표한 이후 대체로 김 주석의 육성 신년사를 발표했으나 김 주석의 사망 다음 해인 1995년부터는 매년 노동신문(당보), 조선인민군(군보), 청년전위(청년보) 등 3개 신문에 공동사설을 발표하고 있다.

▼“北, 美 대화기조 이용 관계 정상화 요구할 것”▼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일 “조선(북한)은 (올해) 미국에 대한 외교적 공세를 강화해 나갈 공산이 크다”고 주장했다.

조선신보는 이날 평양발 기사에서 “핵실험을 실시한 시점에서 미국의 위협과 간섭에 종지부를 찍는 노정도(로드맵)를 마련해 놓았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라며 이같이 전망했다.

이날 발표된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이 핵문제와 대미관계 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공식적으로 북한 당국을 대변하고 있는 조선신보의 이런 전망은 사실상 북한의 핵문제 및 대미관계에 대한 방침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신보는 “북한의 전략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북-미 동시행동을 통해 미국의 적대시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 나가는 것으로 6자회담도 이를 위한 무대”라며 “9·19공동성명에는 북-미 적대관계 청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수립 등이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선신보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정책전환의 의사가 있든 없든 2차 핵실험과 같은 통제 불가능한 북한의 행동을 저지하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며 “대화와 협상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일단은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주력하는 상황인 만큼 북한으로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핵 폐기를 늦추는 대신 6·25전쟁 종전 서명, 북-미관계 정상화를 요구할 것이라는 예고다.

또 조선신보는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북한이 핵실험 실시로 대남정책을 대담하게 전개해 나갈 유리한 조건에 있다”며 “중요한 것은 임기를 1년 남긴 노무현 정권의 정세 대응과 민족공조에 대한 남측 여론의 동향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신문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 일본의 관계에 대해 “올해는 주변국과의 우호관계를 재정립하게 될 것이고 북-중, 북-러 간 외교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6자회담에서 일본만 강경책을 강행해 직접 대화창구를 막은 만큼 일본의 고립은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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