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소나기 일단 피하자” 석달만에 외부와 대화

  • 입력 2006년 10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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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앉은 北-中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 가운데)이 19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인 탕자쉬안 국무위원(왼쪽 가운데)을 만나 한반도의 긴장 완화 문제를 논의했다고 북한 조선중앙TV가 이날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TV 연합뉴스
마주앉은 北-中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 가운데)이 19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인 탕자쉬안 국무위원(왼쪽 가운데)을 만나 한반도의 긴장 완화 문제를 논의했다고 북한 조선중앙TV가 이날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TV 연합뉴스
북한이 핵실험 이후 처음으로 대화에 응하면서 강경 일변도의 대치 국면이 극적으로 바뀔지 주목된다. 올해 7월 미사일 발사 이후 “세계가 모두 적”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던 북한이 3개월 만에 일단 대화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인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 일행을 접견한 19일 양국은 비교적 신속하게 회담 내용을 전했다.

특히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회담 자리에서는 두 나라 사이의 친선관계를 발전시키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문제, 상호 관심이 있는 일련의 국제문제가 토의됐다”라고 전해 의견 교환이 밀도 있게 진행됐음을 강력 시사했다. 통신은 대화가 ‘우호적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날 회담에는 중국 측에서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부 상무부부장과 6자회담 중국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이, 북측에선 북핵 외교를 총괄하고 있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 김영일 부상이 배석했다. 양국의 6자회담 관련 주요 간부가 모두 자리를 같이한 것이다. 그만큼 회담의 무게를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다.

이를 보고 일각에서는 섣부른 낙관론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강경 제재’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전술적 변화에 불과하지 ‘핵개발 포기’라는 근본적 변화가 아니라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왜 대화에 응했나=무엇보다도 세계의 일치된 강경 제재를 일단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중국의 태도를 누그러뜨림으로써 미국과 중국이 한목소리로 북한을 강력 제재하는 사태를 막자는 것.

중국이 본격적으로 북한 제재에 나서면 북한 경제는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수출입의 52.6%(한국 제외)가 중국과의 교역일 정도로 중국 의존도가 높다. 원유는 52만3000t 전량을 중국에서 들여왔다. 식량은 48만여 t이나 지원받았다.

▽2차 핵실험 어떻게 될까=후 주석이 탕 특사에게 전달하라고 한 메시지의 주요 골자는 ‘추가 핵실험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정례브리핑에서 “탕 특사가 후 주석의 구두 메시지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류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반응은 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7월 미사일 발사 직후 평양을 찾은 후이량위(回良玉) 중국 부총리 면담을 거절한 것과 달리 탕 특사를 접견한 점으로 미뤄볼 때 후 주석의 메시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류 대변인은 “쌍방이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앞으로 미국의 반응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북한이 적어도 2차 핵실험을 조기에 강행하지는 않을 것임을 내비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김 위원장의 탕 특사 접견 사실을 곧바로 자세히 전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6자회담에 복귀할까=북한이 줄기차게 6자회담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선(先) 금융제재 해제’다.

미국이 이에 응할 뜻이 전혀 없는 한 논리적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전술적으로 북한이 6자회담에 전격 복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미 핵실험을 통해 핵능력을 보여 준 만큼 6자회담에서 북한의 발언권이 그만큼 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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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 김정일, 中에 ‘선물’ 줬을까 촉각 ▼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특사인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19일 오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고 후 주석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에 대해 정부는 일단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북한이 7월 5일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중국의 후이량위(回良玉) 부총리와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 등 방북단이 김 위원장 면담을 신청했다 거절당했던 전례에 비춰볼 때 북한이 달라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

정부 고위당국자는 “후 주석의 메시지에는 2차 핵실험을 할 경우 중국도 더는 버틸 수 없다며 6자회담에 조속히 복귀할 것을 설득하는 내용이 담겼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면담에 응한 것은 어느 정도 대화할 자세가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구체적인 면담 내용이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김 위원장의 통치 스타일로 볼 때 탕 국무위원을 만나 뭔가 ‘선물’을 주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탕 국무위원은 지난해 7월 12∼14일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회담을 했다. 이후 북측의 적극적인 비핵화와 6자회담 참여 의지를 이끌어 냈으며 이는 9·19공동성명 합의의 밑거름이 됐다.

일각에선 북-미 양측의 기본자세가 쉽사리 변할 수 없는 만큼 이번 면담으로 특별한 돌파구가 마련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국이 7월과 10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문 채택에 연거푸 찬성하는 등 최근 들어 냉랭해진 북-중 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의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측에서는 그동안 미국의 태도 변화를 약속하며 자신들을 설득해 왔던 중국이 미국 설득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 대해 “더는 중국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 북핵 고미바다 중재 자임한 中

중국 정부는 2002년 10월 2차 북한 핵 위기가 발발한 이래 주요 고비 때마다 특사를 파견해 북한과 의견을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을 해 왔다.

특히 탕자쉬안 국무위원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탕 국무위원은 지난해 7월 12∼14일과 올해 4월 27, 28일에 이어 이번까지 3차례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해법을 논의했다.

지난해 7월 방북 때는 김 위원장은 물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백남순 외무상과 잇달아 만났으며 그 결과 1년 넘게 교착상태에 빠졌던 6자회담을 되살려 9·19 베이징(北京) 공동성명이 탄생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올해 4월에도 탕 국무위원은 후 주석의 특사로 극비리에 방북해 김 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6자회담 복귀 조건으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해제를 주장했고 이를 토대로 중국은 미국 측에 북한의 요구를 전달하며 중재를 모색했다.

2003년 7월에는 다이빙궈 외교부 상무(수석)부부장이 북한을 방문해 김 위원장에게 후 주석의 친서를 전달했다. 그 결과 북한의 첫 6자회담 참여를 이끌어 냈다.

방북에 앞서 미국을 방문해 딕 체니 부통령을 만났던 다이 부부장은 ‘6자회담 내 양자회담 병행’ 카드를 제시하며 북한을 설득했다. 당시 중국은 ‘기술적 이유’를 들어 대북 송유를 한때 중단하는 압박작전도 병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중국의 중재 노력이 매번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올 4월 차오강촨(曹剛川) 국방부장이,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뒤인 7월엔 후이량위 부총리가 이끄는 중국 친선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했으나 김 위원장을 면담하지 못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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