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보며 땅을 치다…대북투자 중소기업인의 신물난 7년

  • 입력 2006년 9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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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섬유 관련 사업을 하는 김상현(가명·42) 씨는 1999년 북한 평양 땅에 첫발을 디뎠다. ‘사업의 신천지’를 발견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당시 김 씨가 운영하던 업체는 인건비 부담으로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었다. 해외 진출을 놓고 고민하다가 중국에서 조선족 브로커를 통해 남한과의 경제협력 사업을 총괄하는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소속 A 씨를 소개받았다.

A 씨는 “투자만 해 준다면 비어 있는 공장을 무상으로 내주고 독점 사업권도 주겠다”고 약속했다. 남쪽에서 설비를 가져와 설치하고 종업원 한 명당 월 50달러만 주면 평양에 어엿한 공장 하나를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가를 치러야 했다. 1만 달러를 A 씨에게 건네고 브로커에게는 별도로 2000달러를 줬다. 무상으로 토지와 공장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큰돈’은 아니었다. 이후에도 북측에서 가끔 무리한 요구를 했지만 ‘시장경제를 모르는 사람들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김 씨는 방북할 때마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수천 달러씩 썼다.

하지만 2000년 공장이 가동되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방북 초청장부터 잘 발급되지 않았다. 민경련에 선(線)이 닿는 사람을 통해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공장의 생산라인을 관리 감독할 권한도 빼앗겼다. 자신의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이 다른 곳으로 빼돌려진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가 빚까지 져가며 투자한 금액은 정식 투자금과 ‘뒷돈’을 포함해 10억 원에 가까웠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와 현대그룹의 대북(對北) 불법송금사건이 불거진 뒤 국내 금융기관들은 2003년 평양 공장의 자산을 모두 부실채권으로 분류했다.

사업도 부진했다. 전기 부족과 현지 인력의 생산성 낙후로 제품의 품질이 떨어져 남쪽에서 물건이 잘 팔리지 않았다. 인천과 남포를 오가는 배편이 한 달에 한 번만 운항돼 물류 비용 부담도 컸다.

문제가 생겨도 북측은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사업을 협의할 당시 간이라도 빼줄 것 같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심한 배신감을 느꼈지만 김 씨는 더는 항의하지 않기로 했다. 자칫하다가는 그들에게 완전히 밉보여 공장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에도 도움을 요청해 봤다. 하지만 “우리가 개입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답만 되돌아왔다.

김 씨가 처음 평양 땅을 밟았을 때의 기대와 감동은 7년이 지난 지금 후회와 심한 자책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아직까지 평양에 공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긴다.

“북한에서 5년 이상 사업한 기업가는 거의 모두 쪽박을 찼습니다. 남북 경협사업이 시작된 이후 북한에 진출한 업체 500여 개가 망했습니다. 북한은 희망의 신천지가 아니라 실패와 좌절의 땅이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의 기업 환경이 어려워지다 보니 ‘싼 맛’에 북한에 투자하려는 남한 기업은 계속 줄을 섭니다. 다들 눈에 뭐가 씌었는지….”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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