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2000년 권노갑씨 퇴진주도 與소장파 도청

  • 입력 2005년 10월 10일 03시 00분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당시 민주당 권노갑 최고위원의 퇴진운동을 벌이던 당내 소장파 의원들을 도청했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정치권에 충격파가 몰아치고 있다.

한나라당은 즉각 “여당도 도청한 마당이니 야당 의원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심하게 했겠느냐”며 DJ 정부의 도청에 대한 전면 수사를 촉구하는 등 여권을 압박하고 나섰다.

그동안 “조직적 도청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DJ 측을 옹호했던 여권과 청와대는 당혹해 하면서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9일 “현재로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김은성 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이 도청 대상이었다고 진술한 ‘민주당 소장파’에 속하던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 신기남(辛基南) 의원 등 열린우리당의 실세 그룹과 당내 개혁파 등은 새로운 상황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 고민하는 듯하다. 이들은 그동안 “DJ 정부 도청 주장은 한나라당의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유력 대권 주자인 정 장관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며 믿기지도 않는 일”이라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신 의원도 “(정풍운동) 당시 숨기거나 두려워할 일을 하지 않았다.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고 천 장관 측은 “정확한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동교동계 이선 후퇴 요구 등 정풍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열린우리당 이호웅(李浩雄) 의원은 “심증만 있던 DJ 때의 도청이 물증으로 드러난 만큼 이제 모든 것을 밝혀야 한다”고 전면적인 진상 공개를 요구했다.

정풍운동의 또 다른 축이었던 ‘새벽21’을 주도했던 장성민(張誠珉) 전 의원은 “당시 국정원이 집과 의원회관 사무실 모든 곳을 도청한다는 얘기를 수차례 들었고 직접 경고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 전 차장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 별도의 사무실을 차리고 국정원의 국내 정치 사찰을 총괄적으로 보고받고 진두지휘했다”고 밝혔다.

‘새벽21’ 대변인 격이었던 김성호(金成鎬) 전 의원은 “국정원이 무차별적으로 도청을 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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