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문 없는 盧-朴회담]거부당한 대연정…다음 수는?

  • 입력 2005년 9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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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는 나눴지만…노무현 대통령(왼쪽)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7일 청와대에서 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8일 중미 순방을 떠나는 노 대통령은 17일 귀국 후 민주당 한화갑 대표,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와도 개별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석동률  기자
악수는 나눴지만…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7일 청와대에서 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8일 중미 순방을 떠나는 노 대통령은 17일 귀국 후 민주당 한화갑 대표,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와도 개별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석동률 기자
“(연정을) 안 받으면 안 받는 대로 전략 같은 게 있지 않겠느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7일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연정 다음의 또 다른 수(手)가 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연정 거부’ 이후를 대비한 수읽기를 이미 마쳤다는 얘기였다.

노 대통령은 또 박 대표가 “오늘로서 연정 얘기는 꺼내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며 면전에서 대연정 제안을 거부했음에도 “상황이 말할 필요가 없다면 하지 않겠지만 여러 가지 결단이 필요하겠다 싶으면 말하겠다”고 했다. “쉽게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다”는 말도 했다.

중미 순방과 유엔총회 참석차 8일 출국하는 노 대통령은 17일 귀국한다. 정치권에서는 추석 연휴가 지난 뒤 노 대통령이 더 강도 높은 승부수를 던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대연정 접고 소연정으로?=노 대통령은 귀국하면 민주노동당 김혜경(金惠敬),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와 개별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핵심 의제는 선거제도 개편 문제.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민주당 3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편 문제를 논의하자는 데에 공감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3당이 공조하여 한나라당을 포위해 압박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더욱이 여권과 민노당이 주장하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사표(死票)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어 필연적으로 다당제 구도를 낳게 된다. 노 대통령도 이날 회담에서 “정책노선에 의한 다당제는 진일보한 것”이라고 했다. 민노당이나 민주당으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 흐름에서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대연정을 거부한 만큼 국회 과반의석을 더욱 확고히 한다는 차원에서 소연정을 추진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대화합 정치를 명분으로 대연정을 제안해 놨는데 영호남 지역대결 구도를 되레 부추길 수 있는 소연정을 선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탈당으로 대연정 계속 압박?=여권 내에서는 노 대통령이 대연정 카드를 접지 않고 다음 수순으로 탈당 결행을 선택할 것이라고 점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부터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테니, 나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말고 연정도 하고 선거제도도 고치자’고 제안해 한나라당을 압박할 것이라는 얘기다.

내년 5월 지방선거도 변수다. 지금의 분위기대로라면 패배 가능성이 높아 지방선거 국면에 돌입하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노 대통령이 탈당 카드를 새로운 제안과 연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여권 관계자는 “탈당 카드는 큰 임팩트가 없다. 한나라당이 뭘 같이 해보겠다는 뜻을 보이면 모를까 먼저 탈당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선거제도 개편 국민투표 제안?=노 대통령이 다음 수순으로 국민의 뜻을 직접 확인하자는 정공법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친노(親盧) 직계인 열린우리당 서갑원(徐甲源) 의원은 “노 대통령이 10월 정기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선거제도 개편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대통령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는 헌법 72조 규정을 발동한다는 것.

대연정에 계속 집착하기보다는 국민투표를 통해 선거제도 이슈의 파괴력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내년 5월 지방선거 시점과 국민투표 시점을 일치시켜 이를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

국민투표에서 패배했을 때 노 대통령은 이미 언급했던 임기 단축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개헌 논의로 방향 선회?=열린우리당 내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대연정에 집착하기보다는 개헌 논의를 조기에 본격화해 권력구조 개편 문제로 바로 들어가자는 주장이 세를 얻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날 박 대표가 “내각제로 가려는 것이냐”고 묻자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대통령제에서도 의회 안에서 정책연합이나 일상적인 연합은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다”고 답했다. 연정과 개헌을 연계하지는 않겠다는 취지였다.

여권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퇴임 후와 연결 지어 개헌 논의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노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자신이 애써 노력해 온 주류세력 교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정치적 목소리를 갖고 싶어 할 것”이라며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내각제 개헌”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내걸고 조기 개헌에 승부수를 건다면 정치권은 또다시 요동칠 수밖에 없다.

▽의외의 대북 제안?=아직까지 거론된 적은 없지만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타결과 남북관계의 급진전이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5월 말경 처음으로 대연정 구상을 논의할 때 8월쯤 6자회담이 타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고 전했다.

그는 “북핵 문제가 타결되면 대규모 대북 지원이 불가피하고 이 문제로 국론 분열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대연정의 명분을 얻을 수 있다고 봤으나 회담이 타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13일 재개되는 6자회담이 타결돼 남북관계가 빠른 속도로 풀려 나갈 때에는 정치권도 이 흐름을 역류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새로운 승부수나 제안은 정치권 내부의 변화가 아니라, 오히려 남북관계에서 촉발될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남북문제와 관련해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제기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구체화하거나 이보다 진일보한 예상 밖의 제안을 북한에 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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