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문서 공개]韓·日 전문가 반응

  • 입력 2005년 1월 17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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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덕/개인 아닌 ‘국민 전체’ 만 배상▼

이번에 공개된 문서엔 1962년 10월 김종필-오히라 메모 등 정작 한일협정의 기본골격이 갖춰진 1961∼62년의 협상 내용이 빠진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한국 측이 강제동원 피해자 수를 103만 명으로 추정하면서 사망자, 부상자, 생존자에게 각각 얼마씩 해서 3억6400만 달러의 청구액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은 새로운 내용이다. 또 일본이 개인보상을 언급한 반면 한국은 일괄지급을 주장한 점이나, 한일협정의 발효로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종결됐다고 규정한 부분은 피해보상 책임의 화살이 일본 정부에서 한국 정부로 돌아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5억 달러의 돈을 내놓으면서 이를 피해 보상 차원이 아니라 경제협력금 내지 독립축하금으로 간주했다는 점도 분명히 드러났다. 따라서 개별 피해에 대한 일본 정부와 기업의 보상 책임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포기된 것은 한국민 전체의 피해 배상에 대한 청구권일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가 이를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경제발전에 투입한 것도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일본군과 군속으로 끌려간 사람에게만 보상하고 독립투사나 국내에서 수탈당한 사람을 외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김창록/협정 고쳐 보상책임 다해야▼

이번 공개는 한일협정의 전모를 보다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자금으로 피해자 개인에게 보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점이다. 정부가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도 보상책임을 인식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개인 보상’에 관한 전반적인 책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거의 분명해졌다. 한편 일본 정부는 청구권의 명목을 오로지 ‘경제협력’에 묶어두려는 입장을 시종 고수했으며 한국 정부의 청구권자금 운용에 관해 세세하게 간섭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보상 문제는 완전히 방치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 점에서 일본 정부가 완전히 면책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문제인 만큼 소송을 통한 해결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바람직한 방향은 한일 양국 정부가 관련 자료의 전면 공개,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배상·보상, 한일협정의 개정 혹은 재체결 등을 통해 1965년에 소홀히 한 책임을 다함으로써 이번 문서 공개를 한일 과거사 문제의 총체적 해결을 위한 계기로 삼는 것이다.

▼다카사키 소지/‘개인청구권 포기’ 日입장 명백▼

한국 정부의 한일협정 일부 문서 공개가 모든 문서의 전면 공개로 이어지기 바란다. 공개를 꺼리는 일본 정부에 모범을 보여줬으면 한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경제협력과 관련된 자료가 많다. 당시 한국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유·무상 자금 공여를 빨리 받기를 원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전쟁피해자 개개인의 대일(對日) 청구권 보상 요구는 소홀히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서 청구권과 관련된 기록은 많지 않다. 일본 측은 협상 과정에서 한국인 피해자의 개인청구권도 주장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을 확인할 것을 거듭 요구했다.

당시 한국 정부 일각에선 한국 측이 청구권 포기를 인정하면 피해자에 대한 보상 책임을 한국 정부가 져야 한다고 인식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이런 사고방식이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법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 정부는 종전의 보상정책을 반성하고 대일 민간청구권보상법을 보완할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한쪽의 당사자인 일본 정부는 자체 보유 자료의 공개와 함께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행동이 수반된 반성’을 해야 한다.

▼고하리 스스무/부당한 측면도… 재교섭은 不可▼

한일협정 문서 공개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도 일본 내에서는 큰 반향이 없을 것이다. 일본의 지식층은 한국에서 어떤 논쟁이 벌어질지, 북한은 어떻게 대응할지에 더 관심이 많다.

한국에서는 한일협정 재교섭과 추가보상 문제가 쟁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문서 공개로 1965년 당시의 협상에서 개인 청구권이 어떻게 차단됐는지 파악된다 해도 양국 외교당국자들이 재교섭 요구를 받아들일 리 없고, 일본의 정치권과 여론도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1965년 협상에서 개인 보상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부당했다. 그러나 당시 한일 양국의 국력과 국제관계에서 판단하자면 일본이 5억 달러의 유·무상 경제협력을 제공함으로써 청구권 문제를 해결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그때의 경제협력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 정치권이 현재의 시점만을 중시해 ‘이랬어야 했다’는 식으로, 과거 판단이 무조건 잘못이라고 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

북일 수교교섭을 앞둔 북한으로서는 한일협정 문서가 상당한 참고가 된다. 북한은 앞으로의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문서를 면밀히 검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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