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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2월 23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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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難…탄핵-수도이전▼
올해 정치권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을 법의 판단에 떠넘긴 대표적인 사례는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심판과 수도 이전 문제였다. 한편 17대 총선에서 선거법을 위반한 의원들이 잇따라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아 정치인들은 법 앞에 주눅이 들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정치권이 유연성만 있었다면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2월 18일과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줄 것을 공개적으로 호소했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대통령의 불법 선거운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만약 노 대통령이 이 단계에서 야당의 비판을 수용했다면 문제가 풀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중립 의무의 준수를 요청하자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고 선거법을 ‘관권선거 시대의 유물’이라고 폄훼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선거법과 헌법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인정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도 방향 전환을 할 계기가 있었다. 탄핵소추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선 탄핵 반대 의견이 다수였다. 또 탄핵 강행 시 총선에서 역풍을 맞을 것이란 의견도 당 내에 많았다. 그러나 야당은 이를 외면하고 탄핵소추안을 밀어붙였다. 결국 여야는 정치적인 문제를 법의 잣대로 재단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노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소추안 기각 결정이 나올 때까지 두 달간 직무를 정지당했다. 또 탄핵역풍은 한나라당을 소수 야당으로, 민주당을 원내 비교섭단체로 전락시켰다.
▽수도 이전=수도 이전에 대해서도 비교적 반대 여론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엔 여당이 이를 무시하고 수도 이전 추진을 강행했다. 한나라당은 내심 반대하면서도, 충청권의 반발을 우려해 정면대응은 하지 못했다. 여야 모두 정치력이 부족했다.
헌재가 10월 21일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자 여당은 쑥대밭이 됐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헌재에 대해 ‘사법 쿠데타’ 등의 비난을 쏟아내 법의 권위를 무너뜨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 정치권에 던진 충격파는 컸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회가 결정할 모든 문제를 헌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자조적인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선거법 위반=17대 총선에서 선출된 국회의원 중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46명으로 16대 총선 당시 26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았다. 이 중 열린우리당 의원 1명이 의원직을 상실했고, 7명이 1심 또는 2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다. 한나라당 의원 중 1명은 2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았다.
또 열린우리당 의원 1명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항소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았다.
이에 따라 국회 과반 의석 유지에 비상등이 켜진 열린우리당 내에선 “사법부가 여당을 탄압한다”는 억지 섞인 주장까지 나왔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錢難…후원금 급감, 한달 모금 30만원 그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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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 정치에서 ‘돈’이 사라진 원년으로 기록될 듯하다.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3월 크게 강화된 내용으로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이 개정된 직후 치러진 17대 4·15총선에선 과거와 같은 금전살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선거 과정에서 돈이 적게 든다고 좋아했던 17대 국회의원들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혹독한 ‘돈 가뭄’을 겪어야 했다.
정치자금법의 개정으로 가장 큰 수입원이었던 후원금이 급격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후원금의 한도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기업(법인)의 후원 금지와 집회에 의한 후원금 모금이 폐지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열린우리당 의장 비서실장을 지낸 김부겸(金富謙) 의원이 17대 국회 들어 지금까지 모집한 후원금은 1400여만 원에 불과하다. 심지어 7월에는 후원금이 34만 원에 그쳤다. 김 의원측은 “과거에는 여당 대표 비서실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으면 후원금 1억 원은 훌쩍 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인 남경필(南景弼) 의원은 23일 “올해는 아예 모금활동 자체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모금한도액은 평년 1억5000만 원, 선거가 있는 해는 3억 원이지만 한도액까지 모은 의원은 극히 일부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9월 현재 17대 국회의원 1인당 평균 후원금 모금액은 9700만 원으로 16대 국회 첫 해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졌다.
돈줄이 막힌 정치인들은 자구책 마련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의원에게 낸 정치후원금 중 10만 원까지는 세액공제 방식에 따라 연말정산(1월) 때 전액 돌려받을 수 있다’는 규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유기홍(柳基洪) 의원은 ‘오늘은 유기홍에게 쏘는 날입니다’라는 제목의 우편물을 발송했고, 같은 당의 한 초선 의원은 “10만 원만 빌려주라. 내년 1월에 갚는다”며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반응은 시원치 않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1500통의 후원금 모금 편지를 보냈지만, 10여 명만 회신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80만 원을 들여 후원금 모금 편지를 인쇄해 돌렸지만 고작 30여만 원만 후원금으로 되돌아왔다.
결국 빚을 지는 의원들도 속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운동권 출신 의원은 올해 마이너스 통장 두 개를 개설했고, 또 다른 의원은 부인의 승용차를 팔아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선거 관리를 담당하는 중앙선관위 직원들이 ‘10만 원 정치자금 기부’에 나서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선관위 직원들은 22일 1인당 10만 원씩 모금한 1억1400만 원을 국회의원 정치자금으로 선관위에 기탁했다.
정치인들은 내심 엄격한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의 개정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비판 여론을 의식해 아무도 고양이 목에 먼저 방울을 달려 하지 않고 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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