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야마 교수 “美네오콘 영향력 대단히 과포장돼 있다”

  • 입력 2004년 12월 9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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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파들로 외교안보라인을 다시 짠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의 출범과 원점을 맴돌고 있는 북한 핵 문제, 한발 더 다가온 일본의 재무장, 꿈틀대는 중국의 아시아 패권주의…. 하나같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국제환경 변화들이다. ‘한미동맹과 동북아의 미래에 관한 워싱턴 국제학술회의’(고려대 일민국제관계대학원·존스 홉킨스대 공동주최, 동아일보 21세기 평화재단·평화연구소 및 한국국제교류재단 후원)에 참석했던 고려대 현인택(玄仁澤) 일민국제관계대학원장이 8일 워싱턴에서 ‘역사의 종말’ 저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를 만나 한반도 주변의 변화를 화두로 대담을 나눴다.》

▽현인택=1989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저서 ‘역사의 종말’이 발간된 뒤 탈냉전 시기의 지구촌은 비관적으로 변했다. 새로운 민주사회가 출범했지만, 종교적 근본주의는 더 강해졌다. 아직도 그 책에서 내린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가 역사의 최종 승리자라는) 결론을 확신하는가.

▽후쿠야마=나는 그 책에서 ‘역사의 종말’을 모든 일의 결론이라고 못 박아 말하지는 않았다. 지난 100∼150년을 살펴보니 근대화가 승자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역사의 종말이란 개념은 역사의 발전 방향은 공산주의를 통한 유토피아로 흘러가는 것이 필연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나의 관찰은 20세기 말 세상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지배했다는 것이었다.

2004년 12월은 1989년보다 비관적인 것은 사실이다. 15년 전보다 근본주의가 더 힘을 얻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문명의 충돌 특히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의 대립을 예견한 새뮤얼 헌팅턴(하버드대) 교수의 전망이 나보다 더 정확했다. 현재의 흐름은 이슬람 세계가 주류와 괴리되면서 나타나는 일과성 정치 현상이라고 본다.

이란을 보라. 1979년 호메이니의 등장과 함께 근본주의가 시작됐지만, 현재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30세 이하의 젊은 층은 자유주의적이고 다원화한 이란을 희망한다. 따라서 다음 세대에는 자유화할 가능성이 크다.

▽현인택=21세기 벽두부터 화두로 떠오른 테러리즘은 치료 가능한 질병인가. 또 테러와의 전쟁은 승리할 수 있다고 보나.

▽후쿠야마=테러는 막을 수 있다. 테러가 위험한 것은 테러할 의지를 가진 세력과 대량살상무기(WMD)가 결합하는 시나리오 때문이다. 나는 랜드연구소에서 근무할 때 테러사태의 상황별 시뮬레이션 작업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아무리 테러집단이라도 핵무기를 쓸 의지가 있다고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점에서 위험한 국면이다. 이라크전쟁과 테러와의 전쟁이 겹치면서 문제가 더 꼬였다.

▽현인택=이라크전쟁은 신보수주의자(네오콘) 그룹이 주도했다는 평가가 있다. 후쿠야마 교수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쓴 것처럼 네오콘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네오콘 그룹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후쿠야마=네오콘의 영향력은 대단히 과대포장돼 있다. 미 정부의 중간간부 가운데 네오콘으로 간주될 수 있는 사람은 꽤 있다. 그러나 실제 결정권을 갖고 있는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네오콘이 아니다. 이들은 애초부터 중동에 민주주의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네오콘의 논리보다는 미국의 안전보장에 관심이 컸다. 이들의 단기적 과제가 네오콘의 구상과 겹쳤을 뿐이다. 네오콘이 이라크전쟁을 일으켰고, 일방주의를 주도했다고 보기 어렵다.

▽현인택=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에서 네오콘 그룹이 강경한 외교정책을 대변할 것으로 우려되는데….

▽후쿠야마=일부 강경파가 정부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경질됐고(fired), 럼즈펠드 장관은 건재하다. 2기 부시 행정부가 첫 4년과 마찬가지로 강경하게 갈 것이라는 신호탄이다. 하지만 이라크전쟁은 정책상 큰 실수다. 미국인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현인택=후쿠야마 교수는 이번 학술회의에서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의 5자 안보체제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5개국이 북한 핵문제 이외에 무엇을 논의할 수 있을까. 에너지, 테러리즘, 인권문제 외에 중국-대만 관계와 같은 핵심 안보 문제를 다룰 수 있을까.

▽후쿠야마=5자 체제는 군사동맹을 맺자는 게 아니다. 현재의 구도에 추가적으로 5개국이 대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채널을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실제로 북한이 무너진다면 북한의 재건비용 부담, 통일한국의 지향점을 논의한다는 점에서 5자 체제는 유용한 틀이다.

일본이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홀로서기’를 시도할 때도 5자는 머리를 맞대야 한다. 또 핵잠수함 유도미사일 확보 등 엄청난 군사비를 쓰는 중국이 5년간 군사비 지출 명세를 5자 체제를 통해 공개하고 참가국이 상호 군사비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 노력에 주목한다. 최근 개최된 ‘동남아국가연합(ASEAN)+한중일’ 정상회의처럼, 중국은 지역적 다자주의를 통해 중심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 일본은 이런 움직임에 (중국의 반대편에 서는)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 중국이 좌지우지하는 동북아를 원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미국과 맺은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현인택=북한의 장래에는 여러 시나리오가 있다. 최근에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가 체제 변형(regime transformation)을 거론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북한의 장래를 어떻게 보는가.

▽후쿠야마=북한 전망은 포기했다. 1990년대 초 여러 견해를 밝혔지만 아무것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누구라도 북한의 장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북한의 연착륙, 20년간에 걸친 중국식 개혁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상황이 반드시 실행된다고 자신할 수 없다. 또 중국식 개방은 북한 당국이 경제정책 권한을 사실상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북한 지도부가 그런 상황에 동의할지 모르겠다.

▽현인택=달리 물어 보겠다. 한국에 북한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자,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점에서 안보 딜레마를 던지고 있다.

▽후쿠야마=북한의 장래를 점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니컬러스 에버슈타트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이 지적한 방식의 강경 조치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동북아 질서를 뒤흔드는 그런 구상에 한국과 중국이 동참할까. 현재 한반도에서 미국과 한국의 국익이 다소 벌어지고 있다. 과거 미국은 한국의 안전보장이 첫 번째 목표였지만, 9·11테러 이후 북한의 핵물질이 외부로 유출돼 테러리스트의 손에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현인택=후쿠야마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일본 한국의 국가 건설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한국 사회는 갈라졌고, 정치는 싸움판이 되고 말았다. 현대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후쿠야마=한국은 잠시 뒤로 물러나 숨을 돌리고 한국 사회가 이룩한 성취를 되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일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국가경제를 현대화하고, 정치제도를 평화적으로 민주화한 업적을 남겼다.

정리=권순택 워싱턴 특파원 maypole@donga.com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후쿠야마 교수는▼

일본계 미국인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민간 연구원, 정부 관리를 거쳐 학자의 길을 선택한 정치·경제·사회학자다.

대표작인 ‘역사의 종말’ 외에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가 사회적 자본임을 강조한 ‘트러스트(Trust)’, ‘대붕괴 신질서(The Great Disruption)’ 등 책을 펴낼 때마다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코넬대에서 서양고전을 전공했고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그동안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분류돼 왔다. 실제로 그는 중동의 민주주의 확산 필요성 등 네오콘 견해에 동조해 왔다.

그러나 올여름 계간지 ‘내셔널 인터레스트(national interest)’에 네오콘의 이라크전쟁 옹호론을 정면으로 공격하면서 이론논쟁을 촉발시켰다. 그는 ‘신보수주의 모먼트’라는 글에서 이라크전쟁은 미국의 법치주의를 흔들었고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안겨 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후쿠야마 교수와 대통령 바이오윤리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료 찰스 크라우트해머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가 네오콘 이론의 방어를 위해 반격에 나섰다.

크라우트해머 씨는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확산시킨다는 네오콘의 구상이야말로 안보불안 요소를 없애는 첩경이라고 주장했다.

학계 일각에서는 후쿠야마 교수가 다자주의를 강조했던 점을 들어 “그는 네오콘이 아니라 국제기구 및 다자외교를 신뢰하는 현실주의자”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미 언론은 후쿠야마 교수의 네오콘 공격을 ‘새출발’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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