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북정책 이분법’ 반박]카드는 두장? vs “카드는 많다”

  • 입력 2004년 11월 22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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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W부시 미국 대통령은 20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정부의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너무 단순화해서 보는 잘못된 시각이 있다" 고 말했다.

이는 '대화 아니면 전쟁'이라는 식의 한국내 이분법(二分法)적 사고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풀이됐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정부가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특수성을 감안한 현실적 정책을 펴고 있을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북핵해법의 이분법 논란을 둘러싼 한미 양국의 인식차와 그 원인을 점검해 본다.》

▼한국의 시각은…카드는 두장?▼

“한국민은 (대북) 무력행사를 얘기하면 전쟁을 먼저 떠올린다. 한국민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경험한 한국민이 느끼는 불안감은 미국민의 정서와는 아주 다를 수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이 같은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발언을 ‘이분법적 사고’로 본다면 그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말한다. 한반도의 특수성과 민감성을 강조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이분법 발언도 노 대통령이나 한국 정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한국이 반대하는 한 미국의 대북 공격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국내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이 미국의 북핵 해법을 대북 공격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춰 선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에) 대화밖에 없다”고 역설하는 데는 1993, 94년 제1차 북핵 위기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도 반영돼 있다고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전했다. 당시에는 대북 강경책에 대해 한국 정부가 미국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미국이 ‘협상 국면’을 ‘대북 제재 국면’으로 전환하자 걷잡을 수 없는 긴장이 한반도에 몰려왔다는 것. 참여정부는 그런 빌미조차 미측에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부 정부 관계자들은 대북 제재 국면을 만들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미국 내 신보수주의자(네오콘)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방해한다고 믿고 있다.

대표적 예로 6월 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3차 6자회담에서 미국 대표단으로부터 “북한이 자신들의 ‘핵 동결 대 보상 방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핵무기 실험을 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을 꼽는다. 정부의 한 핵심관계자는 “북한 대표단은 ‘북한 내에 핵무기를 만들려는 부서를 설득할 명분과 논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미 대표단 내 ‘네오콘’이 이를 왜곡해 미국 언론에 흘렸다는 의구심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현 여권이 북핵 문제를 ‘도 아니면 모’식으로 접근하면서 한미공조의 보폭을 스스로 좁히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미관계 전문가는 “여권 내 이른바 ‘개혁 세력’ 중에는 미국에 대해 너무 모르고, 그 무지를 바탕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하고, 그 오해 때문에 소모적 반미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을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법안’이라고 비난한 일이 대표적 사례라는 것.

정부 내에서도 “‘북핵 해법은 대화밖에 없다’는 좁은 길을 택했다면 더욱 치밀하고 세련되게 한미공조를 다듬어가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도 국내의 반미정서를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미국의 시각은…“카드는 많다”▼

지난해 1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안보분야 참모는 북한 핵 협상을 어린이 인질사건에 비유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인질이 당신의 아이라면, 대화와 특수부대원 투입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었다.

짤막한 비유지만, 그의 얘기에 한국의 북한 핵 해법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다는 것이 워싱턴 외교가의 시각이다.

미국인들은 특수부대원 투입이란 최악의 상황과 ‘대화만으로’라는 이상주의적 방법만을 전제하는 한국식 사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이런 불만이 “미국을 보는 한국의 눈이 너무 단순화돼 있다”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20일 한미 정상회담 발언에 담겨 있다.

맨스필드 재단 고든 플레이크 사무국장은 21일 전화 통화에서 “북한이라는 특수한 상대와의 대화 전략이 효과를 보려면 무력사용 가능성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을 효과적으로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보는 ‘인질극의 해법’은 ‘대화만으로’와 ‘특수부대원 투입’의 중간 단계에 무게가 더 실려 있다. 북한 핵이란 관점에서 보면 대북 경제 봉쇄, 불법 미사일 수출 봉쇄를 위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북한 인권 문제 제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미 정부가 이해하는 한국 내 ‘일부 그룹’의 이분법 시각의 형성과정은 이렇다. ‘일부 신문의 이분법적인 보도→정치인의 국회 발언→언론의 인용 보도→국민의 의식 형성’이라는 흐름을 통해 ‘대화냐, 전쟁이냐’라는 극단적 분위기가 퍼졌다는 것이다.

한미 정상이 20일 한목소리로 “외교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을 통한 해결”을 강조했지만, ‘평화적 외교적 해법’의 정의를 둘러싼 한미간 시각차가 엄존한다는 것도 워싱턴의 관측이다.

부시 대통령의 평화적 방식에는 군사행동을 제외한 모든 가능성이 포함된다. 해상 경제 봉쇄나 PSI 방식까지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를 사실상의 군사적 압박행동으로 간주해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PSI 정책을 “국제적 합의를 위반한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국가간 법질서 유지 행동”으로 설명하고 있다. PSI는 미국 일본 호주 등 15개국이 핵심적으로 활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모두 60개국이 동의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것. 현재 북한은 PSI가 자신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고, 한국과 중국은 북한을 의식해 동참을 미루고 있다.

물론 미국은 한국의 이분법을 비판하기에 앞서 대북 무력사용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워싱턴의 한 전문가는 “미국은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하고, 한국은 북한이 개발한 핵물질이 테러범에게 건네진 뒤 미국을 겨냥한 핵 테러로 이어질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 쪽에서도 그런 상호이해의 기류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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