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실종 6월 3일 처음 알아"

  • 입력 2004년 7월 7일 0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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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무역 김천호(金千虎) 사장은 6일 “김선일씨 피랍사실을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에 알리지 않은 것은 그럴 경우 김씨의 신변이 더 위험해진다고 이라크 현지인들이 조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또 “김씨 피랍 직후 대사관에서 국가정보원 직원을 2차례 이상 만났으나 김씨 피랍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귀국 이후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 오던 김 사장은 6일 본보 기자와 3시간 동안 만나 김씨 석방협상 경위와 감사원 조사 내용 등에 대해 자세히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국정원 직원과 어떤 대화를 나눴나.

“무장단체와 협상 중이던 6월 15일경 국정원 직원의 요청에 따라 대사관에서 1시간에 걸쳐 면담을 했다. 국정원측은 자이툰부대가 추가 파병되면 군납에 협조해 줄 것을 부탁했다. 김씨 피랍 직후 국정원 직원을 한두 차례 더 만난 적이 있다. 김씨 피랍 문제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정부에 알렸다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지 않았나.

“믿기 힘들겠지만 6월 17, 18일경까지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김씨와 함께 납치된 현지 이라크인 운전사의 가족, 현지인 변호사 등이 김씨 피랍 사실을 정부에 공개하면 김씨가 더 위험해진다며 이를 알리지 말 것을 부탁했다.”

―협상은 어느 정도 진행됐었나.

“이라크인 변호사가 6월 9일부터 팔루자 지역 무장단체와 접촉을 시도하면서 김씨가 피랍됐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17, 18일경 우리측 변호사가 무장단체 고위간부를 접촉했을 때 ‘다음번에는 좋은 소식을 주겠다’고 말해 협상이 8∼9분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1일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피랍 사실이 공개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김씨 피랍 사실이 방송되지 않았더라면 김씨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랍 사실 공개 직후 한국 정부와 무장단체간 협상에 성과가 있었나.

“우리측 변호사로부터 ‘22일 정부측이 별도 라인을 통해 무장단체와 접촉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피랍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정확히 언제인가.

“6월 3일 위성전화를 통해 팔루자 미군부대에 있는 우리 직원과 가까스로 통화가 됐다. 그때 김씨 실종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6, 7일경 온누리교회 강부호 목사에게 이를 알렸다. 이후 며칠간 모술 팔루자 등지를 수소문했다. 최악의 경우 김씨가 납치됐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피랍 사실을 확신하게 된 것은 10일 이후다.”

―대사관측은 20여 차례 경고했다고 했는데….

“교민안전수칙 등을 5번 정도 회사 e메일을 통해 받았을 뿐이다. 메일 내용은 이라크 주권이양이 다가오니 조심하라는 정도였다. 교민들이 안전한지 대사관측에서 직접 확인한 적이 없다.”

―감사원에서는 어떤 조사를 받았나.

“감사원은 대사관 누구에게 피랍사실을 알렸느냐에 대해서만 계속 물었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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