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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3일 15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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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모시던 의원이 승승장구해야 휘하에서 일했거나 일하던 비서들도 기를 펴는 법이다. 나는 정반대였다. 최병렬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되던 날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공연히 미안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당하던 날 부끄러움 마음에 하늘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최병렬 대표가 정치적으로 운이 다했다고 여겨지는 순간 오랜 굴레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동시에 내가 최대표 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참모로 남아 있었을 이들에 대한 걱정과 안쓰러움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들은 한나라당 울타리에서만 생존력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한나라당 보좌진들에게는 열린우리당 보좌진의 자신감 넘치는 도전의식도, 민주당 보좌진의 인정과 의리도, 민주노동당 보좌진의 동지적 연대감도 부재하다. 대개가 소심한 중간관리자 타입이거나 시류의 흔들림에 동요하기 쉬운 샐러리맨 체질이다.
16대 국회가 마무리되고 17대 국회가 새로 개원하면서 무수한 에피소드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이목을 끄는 대목은 국회의원들에게 배정되는 의원회관 사무실에 뒤얽힌 이야기들이다. 어느 방이 명당자리라는 둥 어느 방이 저주 받은 사지(死地)라는 둥 호사가들의 입방아를 끌어내기에 충분한 자극적인 소재다.
지난 일요일 MBC에서 방영한 ‘생방송 화제만발 일요일’에서는 의원회관 방배정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다뤘다. 17대 국회에서는 정치신인들이 대거 원내에 입성함으로써 의원회관의 방주인들이 대폭 물갈이됐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풍치 좋은 방을 배정받고 싶은 마음이야 인지상정이겠지만 새 입주자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방을 썼던 예전 주인들이 정치적 영달을 거듭해 꾸준한 복락을 누린 사무실을 차지하기 원했으리라.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인터뷰에 응하는 보좌관 중에서 아는 인물을 한명 발견했다. 사무실에서 썩 친하게 지낸 편은 아니었고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일망정 여하튼 면식이 있는 얼굴을 목격하니 이념과 노선의 차이를 떠나 내심 반가웠다. ‘저 양반 참 무던히도 그 동네에서 오래 버티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 책상이 비뚤어졌다고 비서를 자르는 희극적이면서도 살벌한 풍토-나는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으니 오해 마시라-에서 끈질기게 견뎌내는 것이 신통하면서도 어떤 이유에서든 여의도 주변을 탈출하지 못하는 그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방송에 출연한 비서들마다 이구동성으로 "의원님께서는 좋은 방 나쁜 방 가리지 않고 성실히 의정활동에 임할 각오"라는 약간은 맥 빠지고 조금은 교과서적인 포부를 피력했다. 4년 전 이맘때 땀을 뻘뻘 흘리며 의원회관 사무실에 책걸상과 집기를 들여놓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명색이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건만 실세 중진의원의 초짜 비서였던 나에게는 모든 게 색다르고 신기했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정치인들을 직접 육안으로 면전에서 대하는 것도 별난 경험이었다.
내가 똬리를 튼 방의 위치는 의원회관 중앙엘리베이터 정면이었다. 최근에는 7층이 로열층이라고 하는데 16대국회가 개원할 무렵에는 3층과 4층이 로열층이었다. 3층에는 여당실세들이 몰려있었고, 4층에는 야당중진들이 무리지어 이사를 왔다. 나 또한 덕분에 로얄층 로얄룸에 꼽사리 들어앉을 수 있었다. 사무실문을 나서는 기준으로 오른쪽은 홍사덕 의원의 방이고 왼편은 손학규 의원의 방이었다. 내가 내심 흑심을 내던 모의원의 매력적인 여비서가 있던 방은 대각선 맞은편이었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의원 실명은 밝히지 않으련다.
내가 그랬지. 왼쪽은 흥하고 오른쪽은 망하는 것이 이 시대의 대세라고. 우측에 있었던 홍사덕 의원은 선거에서 낙선해 야인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그는 이라크에서 마지막 정치생명을 불살라야 할지도 모른다. 좌측에 자리 잡았던 손학규 의원은 만사가 순조롭게 풀려 민선 경기도지사로 웅비했다.
방에 입주하는 과정에서 말 못할 사연이 있었다. 그 방이 운이 나쁜 방이라는 것이었다. 방을 사용하던 의원이 임기 중 사망했다고 전해졌다. 최병렬 대표와 절친한 동료정치인이 문제의 방에 들어가지 말라며 농반진반으로 권유했다고 한다. 최대표는 그까짓 것이 뭔 대수겠느냐 하면서 국회사무처에서 배정된 방에 입주했었다. 이후 정국의 전개상황은 익히 주지하는 바대로다. 최병렬 대표는 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함께 명분 없는 대통령 탄핵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아 쫓겨나듯이 대표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그는 17대 총선에 전국구든 지역구든 아예 출마하지도 못했다. 자업자득이었을까.
작년에 최대표는 쌀뜨물 다이어트라는 조롱과 야유를 들으며 단식에 들어갔었다. 단식이 소기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했는지 여부를 떠나 최대표의 건강은 상당해 나빠졌을 것이다. 나로서는 다소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2000년에 지역구에 출마했던 최대표는 선거유세기간 동안 한기를 자주 느끼고 종종 내의를 찾았었다. 권세 있는 정치인 역시 세월의 무게를 피해가지는 못한다.
최대표가 머물던 방이 터가 가히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직도 생생하다. 퇴근이 늦어져 혼자 철야를 한 적이 있었다. 새벽녘이 다가오자 어딘가에서 타는 냄새가 났다. 혹여 화재가 발생한 것이 아닌지 사무실 밖을 둘러봤는데 소화전도 울리지 않고 특별한 낌새도 없는 것이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근처 한강둔치에서 또 폐기물을 불법으로 소각하려니 하고 밤을 새웠다. 아침이 되니 보좌관이 출근하자마자 대뜸 나에게 어디 다치지 않았느냐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내가 영문을 모른 채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되묻자 그는 밤사이에 우리 사무실 바로 아래층 사무실에서 불이 났었다고 알려줬다. 아마 전재희 의원 방이었을 게다. 빈 사무실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니 화인은 누전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홀로 사무실에 남아 있다가 졸지에 유독가스에 질식돼 불귀의 객이 될 뻔했던 것이다. 불난 거야 그렇다 치고 의원회관에 불이 났는데 화재경보기조차 작동하지 않다니. 대한민국 국회의 방재시스템과 안전불감증은 전진해야 한다.
최병렬 대표가 비운 방에는 열린우리당 의원이 입주했다고 한다. 유선호 의원이던가 김성곤 의원이던가. 두 의원의 스태프들이 그 방이 쓰는 사람마다 족족 나자빠진 재수 없는 방이라고 탓하는 것은 아닐까 심히 염려스럽다.
나는 의원회관에 명당자리와 귀신들린 방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단, 행과 불행은 우연한 천운이 아니라 방에 들어온 의원과 보좌진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행운은 운명의 여신이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꽉 움켜쥐는 것이다.
정치인의 행불행은 국민이 결정한다. 푸른 한강이 한눈에 조망되는 로열층의, 중앙승강기가 사무실 출입구와 맞닿은 선망 받는 사무실을 꿰차도 국민의 여망과 시대정신을 통찰하지 못하면 그 방은 흉가가 되다. 건물복도 양사이드 답답한 구석에 틀어박혀 기자들도 쉬이 지나다니지 않고 의원이 수시로 일반인들과 엘리베이터를 나란히 써야하는 ‘후진’ 방에 있어도 민심과 천심을 열심히 읽고 부지런히 국리민복에 힘쓰면 그 터는 명당자리가 된다.
최병렬 대표가 있던 방은 전망 좋은 방이었다. 통로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변두리 쪽방을 분양받은 끗발 없는 초재선 의원들의 질시와 부러움을 샀던 방이다. 그러나 방임자의 정치적 비전과 성과는 방의 가치에 미치지 못했다. 방값을 못한 것이다. 방값을 못했으니 진정한 방주인인 국민들에 의해 쫓겨날 수밖에. 아무래도 내가 최병렬 대표방을 나오면서 그 방에 있던 복이란 복은 전부 싹싹 긁어서 라면박스에 담아온 듯 하다. 박스떼기였던 셈인가. 아침에 아르바이트 일터로 출근하면서 책꽂이 하단에 꽂혀 있던 책들을 바라보며 뭉게구름처럼 솟아난 상념을 정리해봤다. 그 책들은 우리집으로 가져온 최병렬 대표의 장서들이다. 물론 양해를 얻어 들고 나온 책들이다. 훔쳐온 것 아니니 쓸데없이 112에 도난신고하지 마시라.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최병렬 대표의 건강을 빈다. 모셨던 웃어른에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예의일성 싶다. 실패한 정치인의 실패한 비서였을망정 나는 글쟁이로서는 꼭 성공한 글쟁이가 되고 싶다.
- 공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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