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헤어스타일

  • 입력 2004년 5월 21일 18시 38분


한국인처럼 헤어스타일을 통해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국민도 드물다. 새로운 출발을 암시하기 위해 머리를 깨끗이 다듬고, 분노와 항의의 표시로 삭발을 하기도 한다. 삭발은 각종 시위현장이나 유세장에서 가장 상징적인 퍼포먼스가 된 지 오래다. 영화배우와 감독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를 외치며 머리를 밀고, 운동선수들은 연패에 대한 죄책감과 필승에 대한 다짐으로 삭발을 결행한다. 스님들도 수시로 삭발을 통해 출가 당시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곤 한다.

▷남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여자가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파마를 하면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다는 암시다. 아내의 헤어스타일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남편은 사랑받기를 포기한 남자나 다름없다. 인기 작가 C씨의 일화다. 아내가 몇 번이나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어 대답을 하지 않았더니 어느 날 덜컥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왔다. 아내는 다시 “아무래도 이상하지요”라며 남편을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감수성의 작가’도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여인의 마음’이다.

▷때마침 1960∼70년대 대통령 전속 이발사의 애환을 그린 영화 ‘효자동 이발사’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계기로 역대 대통령 전속 이발사들의 체험담이 전해진다. 군 출신 대통령들은 짧고 단정한 머리 손질을 원했던 반면 민간 출신들은 개성 있는 머리 스타일을 선호했다는 회고다. 머리 손질은 해도 ‘경호상’ 얼굴 면도는 할 수 없었고, 머리숱이 적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의외로 머리 손질에 민감했다고 한다. ‘대이회(대통령 이발사들의 모임)’라는 친목모임도 있다고 한다.

▷탄핵 심판 기각 후 노무현 대통령의 헤어스타일이 변했다. 그는 청문회 스타로 날리던 초선 국회의원 시절 장발이었으나 총선과 부산시장 선거에서 잇따라 떨어진 낭인(浪人) 시절엔 더벅머리로 바꾸었다.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에는 공무원 특유의 가르마형이었다가, 대통령이 된 후 카리스마형 올백 스타일로 강인한 인상을 주었으나 직무 복귀 후 스포츠형으로 바뀌었다. 노 대통령의 새로운 헤어스타일이 함축하는 정치적 의미와 행보가 궁금하다. 행여 대통령이 삭발하는 상황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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