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친정체제 밑그림 그리나

  • 입력 2004년 5월 3일 18시 54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4·15총선 직후 열린우리당 핵심관계자들과 가진 청와대 연쇄 회동에서 “앞으로는 한발 뒤로 물러나 있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을 만난 인사들은 한결같이 “내치(內治)에 해당하는 국정의 많은 일을 총리와 내각에 맡기고 본인은 국정핵심 현안만을 챙길 것이라는 의미로 들렸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열린우리당 대선주자군의 입각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들여다보면 거꾸로 노 대통령의 친정체제 강화의지가 곳곳에서 엿보인다. 정동영(鄭東泳) 의장,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 김혁규(金爀珪) 경제특보 등 차기 대권주자군을 입각시키겠다는 노 대통령의 구상은 ‘대선주자에 대한 공평한 기회 보장’이라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들 주자군의 영향력을 일정부분 제어, 상호경쟁을 방지하면서 당과 국회에 대한 청와대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분할 통치’의 의지로도 비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김 원내대표의 경우 노 대통령도 어려워하는 관계. 이에 따라 김 대표의 입각이 당(黨)-청(靑)간의 균형추를 청와대쪽으로 급격히 쏠리도록 하는 계기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초 원내대표를 선호했던 김 대표가 지난달 30일 “여러 군데에서 압력을 받고 있다”며 곤혹스러움을 표출한 것도 노 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 문희상(文喜相) 정치특보의 거중조정 역할도 노 대통령의 힘이 실려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 특보는 지난달 26일부터 강원 양양에서 열린 당 워크숍에서 정 의장과 김 대표 등을 따로 만나 입각을 강력히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특보 자신은 원내대표나 당권에 대한 관심을 부인하고 있지만 그가 당내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청와대의 당장악을 위한 정지작업을 벌이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국회의장도 노 대통령의 ‘정치적 사부’라고 불렸던 김원기(金元基) 의원으로 사실상 내정된 상태다.

결국 노 대통령이 복권(復權) 이후 ‘강한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장애가 될 수 있는 요인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이제부터 진정한 임기를 시작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노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구구한 내각개편 설이 나돌고 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복권을 전제로 한 각종 청사진에 대해 야당에서는 물론 당과 청와대 내에서조차 “벌써 자만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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