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대표단 核시찰 허용]北-美 ‘核대결’ 해빙 신호인가

  • 입력 2004년 1월 2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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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 헤커 박사
시그 헤커 박사
새해 벽두부터 북한이 다음주 평양을 방문하는 미국 대표단의 영변 핵시설 시찰을 허용했다는 보도(USA투데이)가 나오자 북한의 의도와 미 행정부의 대표단 방북 승인 배경을 놓고 추측이 분분하다.

미 행정부가 북핵 해결 시한을 ‘3월’로 잡고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까지 이어져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대표단의 성격은?=아직 성격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미 의회의 지원을 받고 있는 비공식 대표단으로 보인다. 대표단은 핵 과학자인 시그 헤커 박사와 스탠퍼드대 중국 전문가, 상원 외교정책 보좌관 2명, 그리고 전직 국무부 관리로 이뤄져 있다. 이중 상원 외교정책 보좌관 2명은 지난해 8월에도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고, 전직 국무부 관리는 재직시 북한과 협상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특히 헤커 박사는 미국 최초의 핵무기를 제조한 로스앨러모스연구소에서 1985∼97년 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USA투데이는 헤커 박사를 ‘최고 수준의 핵 전문가(top nuclear scientist)’라고 표현했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이와 관련, “로스앨러모스연구소가 미국의 뉴멕시코주에 있고 헤커 박사가 뉴멕시코주의 기술고문위원회에 관여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빌 리처드슨 주지사도 대표단의 평양 방문과 연관돼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리처드슨 주지사는 여러 차례 미국과 북한의 협상 중재자로 나섰던 인물. 또 중국전문가와 대북협상 경험이 있는 전직 국무부 관리가 가세한 것은 이번 대표단의 목표가 단순한 영변 핵시설 시찰 이상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한의 노림수는?=정부는 북한이 대표단의 영변 핵시설 방문을 받아들인 것은 아무래도 ‘시간벌기용’ 성격이 짙다고 판단하고 있다.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이 공전되는 상황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을 경우 시간은 북한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과 함께 미국이 지목한 ‘불량국가’ 그룹에 속했던 리비아가 최근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기로 한 점을 고려할 때 북한도 국제사회를 향해 긍정적인 제스처를 보일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북한은 이 같은 태도 변화를 통해 6자회담 재개의 걸림돌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미국 대표단이 영변 핵시설을 방문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곧바로 대북 압박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미 의회 전문가그룹이 방북하더라도 방문할 핵시설 선정 문제와 공개 수위 등을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일 가능성이 높아 이번 방북이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가 될 것으로 예단하기는 어렵다.

특히 이번 방문은 미 정부 차원의 공식 방문이나 핵개발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정식 사찰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의 조치가 6자회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또 미 행정부가 대표단의 방북을 허락한 배경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미 행정부가 대표단의 방북을 허용한 것은 과연 북한이 회담에 임할 의지를 갖고 있는지, 북한 핵이 기술적 차원에서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美, 200년 금창리 방문이후 두번째 시찰 ▼

미국의 위성사진 촬영사인 디지털 글로브가 지난해 3월 촬영한 북한 영변의 5MW급 원자로. 오른쪽 굴뚝(원 안)에서 나오는 연기는 북한이 1994년 제네바합의 이후 동결했던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제공 디지털 글로브

미국 대표단이 북한의 영변을 방문하는 것은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확인하기 위해 평북 대관군 금창리 지하시설을 사찰한 것을 연상시킨다.

금창리 사건은 미 뉴욕 타임스가 1998년 8월 “북한이 포기했다던 핵무기 개발을 금창리에서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은 북한에 해명 및 사찰을 요구했고, 북한은 4차례에 걸친 회담 끝에 99년 3월 사찰을 전격 수용했다.

미국은 이에 따라 같은 해 5월 21일부터 4일간 금창리 지하시설을 조사했으나 텅 빈 지하 동굴만을 확인했을 뿐 핵개발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1년 뒤인 2000년 5월 미국의 2차 조사단 파견 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금창리 사찰의 대가로 당초 북한이 요구한 3억달러는 거절했으나 ‘인도적 지원’이란 명목으로 쌀 60만t을 북한에 제공했다. 북한은 결국 텅 빈 동굴만 보여주고 막대한 실리를 챙긴 셈이 됐고, 위성사진에 주로 의존해 금창리 핵개발을 의심했던 미국은 위성정찰의 한계를 실감해야 했다.

그러나 금창리 사찰은 북-미간 직접대화를 가속화했고, 미국은 북핵 문제를 재점검하게 됐다. 그 결과가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장관이 주도한 ‘페리 프로세스’.

페리 장관은 당시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은 막아야 한다”면서도 “한국정부의 대북한 포용정책이 북한의 핵개발을 막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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