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올해의 말·말·말]盧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

  • 입력 2003년 12월 29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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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올 초 이 문구를 내걸며 한국 정치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석 달도 안돼 노 대통령의 입에선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5월 21일)는 발언이 나왔다. ‘대통령이 사용할 언어는 아니다’는 비판을 받으며 최대 유행어가 됐다.

야권은 국정 혼란이 빚어질 때마다 “국민 노릇 못해 먹겠다”고 패러디했다.

3월 9일 노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된 평검사와의 대화 도중 피의자 신문하는 듯한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라고 맞받았다. 이후 네티즌들은 ‘오만방자하다’는 의미의 ‘검사스럽다’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노 대통령이 24일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 찍는 것은 한나라당 돕는 것”이라고 말하자, 민주당 유종필(柳鍾珌) 대변인은 “대통령님,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입니까”라고 반박했다.

노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강금원(姜錦遠) 창신섬유 회장은 국회에 출석해 “국정감사가 아니라 코미디야”(9월 29일)라고 정치권을 조롱했고, 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장관도 국회 법사위의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법 통과 과정에서 “호호호, 코미디야, 코미디”(11월 7일)라고 쓴웃음을 터뜨렸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3일 단식 8일째인 최병렬(崔秉烈) 한나라당 대표를 방문해 “굶으면 죽는 것은 학실(확실)하다”고 말해 ‘YS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3년 정치에는 유난히 ‘동물’이 많이 등장했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8월 22일 공식회의 석상에서 ‘올챙이 시절 모른다’ 등 노 대통령과 개구리의 다섯 가지 닮은 점을 언급하자, 노 대통령 지지자들은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 등 한나라당과 바퀴벌레의 다섯 가지 닮은 점을 만들어냈다.

민주당 박상천(朴相千) 전 대표는 5월 신당파에 대해 “다른 새의 둥지에서 알을 낳아 몰래 키우는 뻐꾸기”라고 비난했고, 15일 한나라당을 전격 탈당한 김혁규(金爀珪) 전 경남지사는 ‘2003년판 철새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노 대통령은 19일 대선 승리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고기(유권자)를 많이 잡는 경기(선거)에서는 떡밥(금품)을 많이 뿌려야 고기를 많이 잡고 경기에서 이긴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연초엔 ‘대통령’이던 국민이 1년 만에 ‘떡밥을 쫓는 물고기’로 전락한 셈이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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