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규모 ‘盧心’ 실렸나

  • 입력 2003년 10월 27일 22시 07분


이달 말로 예정된 정부의 이라크 2차 현지조사단 파견을 앞두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한 고위관계자가 27일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적은 2000∼3000명의 파병 규모를 언급, 그 배경이 무엇인지 주목된다.

이 관계자는 파병문제에 관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함구령’에도 불구하고 이날 일부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파병 규모에 대한 추측이 난무해 국민이 대단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며 “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파병 규모를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말한 파병 규모는) 사견이지만, NSC 내부에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얘기”라며 “일부 언론에 보도된 과장된 수치는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NSC의 다른 관계자도 “(파병 규모가)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고 그런 정도로 가닥이 잡힌 것”이라고 언급했다.

관심을 끄는 것은 그의 발언이 ‘노심(盧心)’을 반영한 것인지 여부이다. NSC 고위관계자가 가장 민감한 이슈인 파병 규모를 스스로 공개한 만큼 노 대통령과의 사전교감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이날 전투병 파병을 반대하며 무기한 단식농성 중인 열린우리당 임종석(任鍾晳) 의원에게 위로 전화를 건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정부가 추가 파병을 결정한 이후 국방부 등에선 독자적인 작전을 위해 5000∼1만명 파병의 당위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NSC 관계자가 상대적으로 소규모 파병을 언급한 것은 전투병 파병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한 의도일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2차 조사단이 전후 복구 등 비군사 부문의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것도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또 앞으로 파병 규모를 둘러싼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가 갖고 있는 패의 일부만을 내보여주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추가파병을 약속한 상태에서 미국이 원하는 경보병 대신 비전투병 위주의 소규모 파병을 정부가 추진한다면 외교적 논란이 빚어질 개연성이 없지 않다.

또 정부의 외교 국방 라인에서는 대규모 파병을 선호하고 있어 앞으로 파병 규모를 확정할 때까지 적지 않은 혼선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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