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인공기와 성조기 동일한 잣대 무리”

  • 입력 2003년 8월 19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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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9일 보수단체가 북한의 인공기를 불태운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성조기와의 형평성을 언급한 것은 법적으로 정합성이 없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우선 성조기와 인공기는 동등한 법적 비교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 형법 109조에 따르면 공공기관이나 주한 외국기관에 게시 게양된 국장과 국기를 모독할 경우 관련법 위반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따라서 반세기 이상 굳건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의 성조기는 실정법상 보호 대상이다.

반면 관련법에 따르면 북한은 여전히 반국가단체이고 그 상징인 인공기는 이적 표현물로 규정돼 실정법상으로 보호대상이 될 수 없다.

인공기와 성조기를 불태운 주체의 성격과 취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부 차원에서 합법화 논의가 거론 중이지만 여전히 현행 대법원판례와 관련법상 이적 및 불법단체인 한총련이 성조기를 불태운 것은 실정법 위반인 동시에 한미동맹 관계를 훼손하고 국익을 해치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을지로5가 주한미군 극동공병단에 난입, 부대 내에 게양됐던 성조기를 끌어내려 불태운 한총련 학생들에 대해 정부가 처벌 방침을 밝힌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반면 보수단체가 8·15 행사장에서 인공기를 불태운 것은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탄압과 핵개발에 나선 북한 지도부에 대한 비판으로 화해협력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 입장에서 부담은 되겠지만 실정법 위반은 아니라는 것.

중앙대 제성호(諸成鎬·법학과) 교수는 “정부가 북한의 트집에 대해 냉정한 대처가 아닌 조기에 유감을 표명한 것은 국민정서를 감안할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특히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최대권(崔大權·법학과) 명예교수는 “실정법상 명백히 보호 대상이 아닌 인공기를 불태운 것은 어디까지나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한다”면서 “이번 조치로 결국 북한의 우리 정부 길들이기에 끌려갔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다수의 공안검사들도 인공기와 성조기에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 재단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지역의 한 공안검사는 “국가보안법상 엄연히 북한이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상황에서 대통령의 직접 유감 표명은 관련법 적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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