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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8일 23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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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재처리 움직임으로 인해 악화일로를 치닫던 북핵 국면이 6자회담으로 평화적 해결의 전기를 맞긴 했지만 북한이 핵 포기를 전제로 확실한 안전보장을 요구하며 시간을 끌 경우 회담이 공전돼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은 요원해질 우려가 있다.
이 경우 대북 대화에 회의적인 미국의 강경파들이 지지부진한 회담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대북제재의 목소리를 높일 개연성이 크기 때문에 6자회담은 좌초될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따라서 파월 장관은 회담에 앞서 북한에 미국이 준비한 카드의 일부를 공개함으로써 북한 역시 진지한 자세로 회담에 나오도록 대북 신호를 보낸 것일 수 있다. 북-미 양국의 협상파에 6자회담은 사실상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파월 장관의 구상은 그동안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법적 구속력 있는 보장엔 미치지 못하지만 미국으로선 상당한 성의를 보인 카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그동안 다른 국가와 불가침 협정을 체결한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설령 행정부가 북한과 이를 체결한다고 하더라도 의회가 인준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를 잘 안다.
그러나 이번 구상은 지난해 2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구두로 천명한 것이나 94년 제네바합의 때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이 북한에 서한으로 불가침을 약속했던 것에 비해선 훨씬 진전된 형태이다.
더욱이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6자회담의 다른 참여국들도 북한의 안전을 공동으로 보장한다면 북한의 위기의식은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은 당초 북한에 핵 선(先)포기를 강력히 요구하며 대북 체제 보장을 하는 방안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6월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일 3개국 조정감독그룹(TCOG)회의에서 한국과 일본이 대북 제안의 초안을 제시한 이후 한일과의 잇단 협의를 통해 미국측 안을 마련하게 됐다.
파월 장관이 밝힌 의회 결의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일지는 분명치 않다. 상원이나 하원 단독 결의안일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구속력이 강한 상하원 합동 결의안일 수도 있다.
어쨌든 미국은 북한이 솔깃하게 생각할 만한 확실한 ‘미끼’를 던진 뒤 북한이 결국엔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외교적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기흥기자 eligius@donga.com
▼“北, 美제안 결국엔 수용할 것”…정부-전문가 반응
미국 의회의 결의안을 통해 북한 체제를 보장하겠다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구상에 대해 정부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이 임박한 시점에서, 회담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미국의 대북강경책에 대한 부담과 우려를 덜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6자회담의 당사자인 외교통상부는 표면적으론 일단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위성락(魏聖洛) 북미국장은 “파월 장관은 아마도 (여러 경우의 수를) 예시하는 차원에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라면서도 북한이 이 같은 구상을 수용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그는 “6자회담이 시작되면 북한은 처음엔 (불가침) 조약을 요구할 것이지만, 협상을 오래 지속하면서 대화를 나눌 경우 서로 기대치를 낮추다 보면 결국 (미국 제안을) 수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6자회담 전망이 밝아졌다는 점에서는 국내 전문가들도 한 목소리를 냈다.
연세대 문정인(文正仁) 교수는 “정식 조약이나 대통령의 행정협정보다는 낮은 차원이지만, 대북 안전보장 문서를 의회가 결의안 형식으로 인정한다는 해법은 미국이 북한을 안심시키기 위해 꽤 성의를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의 김연철 교수는 “(불가침 조약은 안 된다고 천명한) 미국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방안을 내놓았다”며 “미 행정부 내에서 온건론자가 힘을 얻고 있는 징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파월 장관의 발언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휴가지에서 공화당 안보팀의 장시간 논의를 거쳐 나온 제안이란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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