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새 특검법안 단독처리]대통령거부권 의식 ‘北송금’ 제외

  • 입력 2003년 7월 8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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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원내총무의 ‘새로운 정치 실험’인가, 아니면 ‘독단적 원맨쇼’인가.

8일 한나라당이 홍 총무의 주도 아래 새 특검법안을 전격 수정해 법사위를 통과시킨 것은 여야 모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한나라당 대북송금 특위위원들이 홍 총무의 결정에 반발해 전원 사퇴를 결의할 정도였다.

수사 대상을 사실상 ‘150억원+α 비자금 사건’으로 한정한 수정안은 “대북 송금 사건을 제외한 150억원 사건 관련 새 특검은 수용할 수 있다”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입장에 상당히 근접한 것이다.


▽홍 총무의 전격적 특검 수정=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7일 밤까지도 “새 특검법안은 원안대로 처리한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정치쟁점화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8일 오전까지 한나라당의 이 같은 원안 강행 처리에 대비해 ‘법사위 전체회의를 전면 거부하겠다’는 대응책을 마련한 상태였다. 그러나 홍 총무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한나라당 소속 법사위원들과 긴급회의를 가진 뒤 특검법안 수정을 전격 결정했다.

한 의원은 “회의에선 특검 원안을 강행해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되면 ‘150억+α 비리 의혹’도 수사 적기(適期)를 놓치게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한나라당의 전격적인 수정안 제시에 당황해 정균환(鄭均桓) 원내총무를 국회 법사위원장실로 불러 별도의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야당 수정안 단독 처리와 여진(餘震)=홍 총무는 민주당 의원들을 2, 3차례 설득했지만 민주당측이 사전 합의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며 회의장 입장을 계속 거부했다.

홍 총무는 이에 김기춘(金淇春) 법사위원장, 김용균(金容鈞) 한나라당 간사와 회의를 갖고 “민주당이 정 안 들어오면 그대로 밀고 가자”고 결정했고, 오전 11시10분 곧바로 회의를 시작해 수정안을 가결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발칵 뒤집혔다. 특히 최 대표는 이날 오후 홍 총무, 이해구(李海龜) 당 대북비밀송금진상규명 특위위원장과 긴급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 홍 총무에게 “매우 섭섭하다”며 불쾌한 감정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해구 위원장은 회동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전면적인 특검을 실시해야 하는데 비자금 부분에 대해서만 특검을 실시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특위위원 전원의 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홍 총무의 결정에 대해 “대북 송금 사건의 진실을 덮으려고만 하는 정부 여당의 정치적이고 정략적인 움직임에 우리 당이 휩쓸리는 것밖에 안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감찰 “150억+α 계좌추적 당분간 계속”▼

검찰 수뇌부는 그동안 드러내진 않았지만 ‘대북 송금 의혹 사건’ 특검팀의 자료를 바탕으로 무기거래상 김영완(金榮浣)씨의 돈세탁 내용을 파헤쳐 보겠다는 의욕을 보여 왔다. 특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법안 통과가 무산됐을 경우 ‘검찰이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의견까지 밝힐 예정이었다.

그러나 8일 국회 법사위원회가 새 특검법을 통과시키자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대검의 한 간부는 이날 “검찰이 현대 비자금 150억원을 둘러싼 의혹을 시원하게 밝혀낸다면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를 놓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검찰 자성론(自省論)도 나왔다. 올해 2월 대북 송금 의혹 사건 수사를 검찰이 유보함으로써 스스로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검찰이 수사를 맡아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국민 여론이 쉽게 승복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특검이 맡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나오기도 했다. 어차피 정쟁이 예상되는 사건인 만큼 특검이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다.

검찰은 일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새로운 특검이 임명될 때까지 현대 비자금 150억원과 관련된 계좌 추적을 계속할 방침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현대의 비자금 외에 다른 종류의 ‘괴자금’이 나올 경우에도 수사 자료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대검 중수부의 한 관계자는 “특검과 달리 검찰에서는 범죄 혐의가 있는 한 수사 대상에 한계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검은 새 특검이 임명될 경우 현대 비자금 150억원 이외에 김씨가 세탁한 것으로 확인된 추가 자금에 관한 조사 자료를 모두 넘겨 일단 수사 여부에 대한 판단을 특검에 맡길 방침이다.

이 경우 특검의 수사활동 범위를 넘어서는 범죄단서는 다시 검찰로 되돌아 올 가능성도 있다. 새 특검이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사에 한정되고, 김영완씨가 돈세탁했던 이른바 알파(α) 부분이 제외될 수 있기 때문. 따라서 검찰이 새 특검과 무관하게 신속하게 계좌 추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어차피 떠맡게 될 ‘알파’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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