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지시가 안 먹혔다면

  • 입력 2003년 5월 29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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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지시가 참모들에 의해 무시된다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정부가 전교조에 굴복했다는 비판여론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한번 노무현이의 성질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대통령 지시가 먹히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은 지금의 국정혼란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통령이 타협하지 말고 법대로 밀어붙이라고 했는데도 교육부총리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이 지시를 무시한 채 자기들끼리 합의했다’는 노 대통령의 말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노 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어 영(令)이 안 선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이 확고한 의지를 참모들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경우라도 잘못된 일이다.

대화와 타협으로 사회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 자체를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떤 대화와 타협도 법치(法治)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데 정부는 지난 석 달 동안 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두산중공업 파업, 화물연대 운송 거부에 이어 전교조 사태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노조나 이익집단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이었다. 무원칙하게 양보해 놓고 대화와 타협으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법치정신을 훼손하는 일이자 국정 난맥을 일으키는 행위다.

노 대통령의 일관성 없는 발언도 국정혼란의 원인이다. 노 대통령은 전교조에 대한 ‘법대로 처리’ 지시가 먹히지 않았다고 했다가 하루도 안 지나 “너무 양보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방미 중 언행에 대해 “미국을 칭찬하다 조금 오버했다”고 언급한 것도 장소와 상황에 따라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중치 못한 태도다.

대통령의 지시가 먹히지 않고, 대통령의 말이 수시로 변하면 국민은 불안해진다. 노 대통령은 지시를 거부한 참모를 단호하게 조치해 리더십을 확보하든지, 아니면 그들이 지시를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입장을 명확히 표현하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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