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백진현/‘韓美신뢰’ 행동으로 보여라

  • 입력 2003년 5월 15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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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간의 첫 번째 한미정상회담이 비교적 무난하게 마무리됐다. 2년 전 김대중-부시 정상회담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데다 한미관계가 최악의 상황에서 열린 회담이었던 만큼 걱정과 우려가 적지 않았다. 정상회담의 실제 내막을 잘 알 수는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이번 회담으로 지난겨울 이후 악화일로를 치닫던 한미관계는 일단 회복의 계기를 마련한 것 같다. 그러나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북핵 위기에 대해 양국이 분명한 공동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해 앞으로도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간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통해 회복계기 마련 ▼

현재 한미관계에서 최대의 현안은 주한미군 재조정과 북핵 문제 두 가지다. 지난겨울 이후 반미감정의 확산과 미군 용산기지 및 2사단의 한강 이남 재배치 결정은 서로 맞물려 한미동맹의 근간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특히 2사단의 재배치 문제를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감안하면서 신중히 추진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 양국 정상은 북한의 핵무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점을 재천명해 최근 논란이 된 미국의 북한 핵 보유 인정설이 미국 정부의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북핵 해법과 관련해서는 한편으로는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지만 동시에 북한의 행동 여하에 따라서는 추가조치를 고려할 수도 있다고 하여, 앞으로 대북제재를 비롯한 보다 강력한 조치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는 결국 북핵 문제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를 남겨둔 채 외교적으로 적당히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문제는 앞으로 북한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벼랑끝 전술을 계속할 때 과연 한미공조가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지에 있다.

노 대통령은 이번 방미를 통해 자신에 대한 미국 조야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고, 특히 부시 대통령과의 신뢰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관계가 지금 신뢰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고, 이렇게 된 데에는 옳든 그르든 노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 인식이 한몫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만큼 노 대통령이 이러한 인식을 바꾸고 미국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국익을 위해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뢰란 말이나 외교적 수사로만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뢰란 행동과 실천이 뒷받침되고 때로는 감당하기 벅찬 어려운 결정도 내릴 수 있어야 쌓을 수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진정으로 한미동맹을 중시하고 한미간 신뢰관계를 쌓아가기를 원한다면 이라크전 파병 결정처럼 앞으로도 국익을 위해서라면 인기 없는 결정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필요나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면 신뢰는커녕 불신만 높아질 뿐이다. 결국 한미간 신뢰관계는 앞으로 노무현 정부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당면한 시험대는, 북한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하거나 미사일 수출을 감행하는 등 한반도나 국제안정을 위협하는 행동을 계속해 대북제재의 필요성이 제기될 때 과연 노무현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가 될 것이다.

▼북핵제재 공조가 첫 시험대 ▼

한미정상회담 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희망과 걱정을 가지고 미국에 왔는데 걱정은 벗고 희망만 가지고 돌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한미관계에 걱정할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지만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앞으로도 많은 걱정거리가 생길 것이다. 최근 부시 대통령의 핵심 정치참모인 칼 로브는 내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이 경제가 아닌 테러 이슈로 승부를 걸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이라크전쟁 이후에도 불량국가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은 부시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며 이런 점에서 북핵 위기도 계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걱정을 덜기 위해서는 한미간 공조를 보다 긴밀히 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백진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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