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발언으로 본 '국정운영 2개월半']<下>언론분야

  • 입력 2003년 5월 9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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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관▼

▽유재천 교수=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언론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다 보니 정부의 언론정책이 경제 외교 등 다른 국정과제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끌게 됐다. 노 대통령의 언론 담론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보수·족벌언론이라며 일부 언론에 대해 적대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 또 하나는 언론매체별로 우호적·비우호적인 태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비우호적 매체에 대해 차등해서 접근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효성 교수=새 정부가 출범하면 언론과의 허니문기간이 있기 마련인데 요즘 청와대 입장에서는 언론의 비판이 너무 심해 정권 5년 중 마지막 2개월을 보내는 심정일 것이다. 자연히 노 대통령은 언론문제를 마음에 두고 언급을 자주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본다. 기존 정치지도자들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였는데 노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젊고 운동권 경력도 있어 솔직히 말하는 것이 습관인 것처럼 보인다.

▼연재물 목록▼

- [盧 '국정운영 2개월半']<中>경제사회분야
- [盧 '국정운영 2개월半']<上>정치분야

▽김영석 교수=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언론에 대해 직설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한 세계 역사상 초유의 대통령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언론 개혁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보다는 노 대통령의 말과 어휘에서 풍겨 나오는 뉘앙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과 우려감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출입처 제도, 오보에 관한 대응 등에 대해서는 건설적인 논쟁도 있었다.

▽유 교수=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이른바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빅3’ 신문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한 것은 그가 재야시절과 대통령후보시절 언론으로부터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고 여기고 이를 가슴 깊이 새긴 것 같다. 그러나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취임 전에 갖고 있던 피해의식을 취임 이후에도 그대로 반영해 발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교수=새 정부 출범 후 6개월은 지나야 제대로 업무 파악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때까지는 언론들이 비판을 자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처음부터 국정 운영을 엉터리로 하면 안 되겠지만, 처음부터 잘못한다고 ‘건드리면’ 정권도 화가 날 것이다. 그리고 언론이 정권에 대한 감시·비판은 사실에 입각해야 하는데, 특히 빅3는 정권에 대해 적대적이다 보니 사실 확인이 안 된 것을 따옴표를 붙이면서 보도하는 경우도 있다.

▽김 교수=추측 기사 같은 관행들은 빅3 외에 다른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한국 언론의 관행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한다. 언론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는 결국 권력 감시이다. 만약 노 대통령이 언론의 비판적인 태도에 대해 취임 후 조금 참았더라면 최근의 논란은 안 생길 수도 있었다.

▽유 교수=“언론으로부터 박해받았다”는 대통령의 표현은 과장된 면이 있다. 취임 전 노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비판 중에는 편향된 시각도 있었겠지만, 선의의 비판도 있었을 텐데 모든 것을 다 박해라고 한 것은 지나쳤다.

▽이 교수=언어폭력이라는 말도 있는데 언론에 의한 피해가 커서 박해라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아마 맺힌 게 많아서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겠는가.

▼홍보업무 운영방안▼

▽유 교수=대통령이 오보와의 전쟁을 치른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은 공무원들은 “언론과 접촉해 불이익을 당하면 어떡하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이란 점에서 역효과가 있다.

▽이 교수=대통령으로서는 가질 수 있는 올바른 언론정책이지만 시행 과정에서 취지가 충분히 공무원들에게 인식되지 않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관료의 기밀주의를 옹호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홍보업무 운영방안’은 대통령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렇게 해석될 대목이 있다.

▽김 교수=개인적으로 MBC 100분토론을 보고 노 대통령의 언론정책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이 풀렸다. 물론 정보공개법 등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가운데 시행되는 것에는 여전히 걱정이 많지만 대통령이 “기자실을 폐지한 것이 아니라, 기자단을 폐지한 것이다. 담합구조 폐쇄가 목표다”라고 말한 것을 보고 큰 우려는 없어졌다.

▽유 교수=‘홍보업무 운영방안’ 등과 관련, 노 대통령은 “공무원들이 기자를 만난 후 상부 보고 여부는 개인의 판단에 달렸다”며 다소 활로를 열어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오보를 막으려면 기본적으로 언론의 사실 확인 요청에 잘 응해야하는 것이다. 지금은 언론이 보도하면서 오보 여부도 잘 모르는 상황 아니냐. 그리고 대통령이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정부가 열심히 일한 것이 정확히 언론에 전달되도록 하되 정부의 업무가 잘못됐다고 지적한 보도가 있으면 해당 부처는 그에 관한 보고서를 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공무원들이 기자들에게 정보를 알려주려고 해도 쉽지 않게 되었다. 말의 파장이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 지를 심사숙고해야 하는데 평소의 생각을 가볍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이 교수=이는 대통령이 정부 부처에서 업무를 잘 홍보하도록 해라고 말한 것인데, 말을 하다 보니까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대통령이 곡해를 낳을 수 있는 말은 가급적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언론 관계 전망▼

▽김 교수=대통령 취임 후에는 언론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조폭·족벌 언론이라는 용어도 되도록 자제하고, 특정 방송사를 지칭하거나 특정 신문사를 방문하는 등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야기하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유 교수=요즘 보면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이나 시민사회단체들도 보수 언론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과격한 주장을 하는 언론도 있고 온건한 언론도 있을 수 있다.

▽김 교수=노 대통령은 중소 신문과 방송·인터넷 등에는 빅3 신문과 달리 우호적이다. 노 대통령은 언론시장에서 독과점을 형성한 빅3 신문이 일방적으로 비판하기 때문에 건전한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 같다.

▽이 교수=시장 지배력으로 볼 때 빅3가 시장을 지배해 언론이 다양하지 않다. 사실 빅3 외의 매체 수는 많지만 시장 지배력으로 보면 다 합쳐봐야 빅3 중 한 신문의 반도 안 된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빅3에 대해 관용적이지 못하다고 하는데, 이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가령 진보적 인사가 정부의 주요 직책을 맡으면 빅3가 좌파로 몰아 내쫓으려고 하지 않았나.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원한다면 상대방도 그렇게 해야 한다. 정권이나 한겨레신문이 반성해야 한다면 빅3는 더 반성해야 한다.

▽김 교수=일부에서 빅3가 신문시장의 75%를 점유한다고 하는데 이를 놓고 논란이 많다.

▽유 교수=노 대통령이 4월 7일 신문의 날 기념식에서 “보수를 대변하는 신문이 4분의3(75%)을 차지해 큰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빅3가 신문시장을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조사가 이뤄진 게 없다. 일부 언론단체가 말하는 점유율 75%의 근거는 그만큼 빈약한 것이다.

▽김 교수=인터넷 케이블 위성 뉴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신문시장의 산업적 규모를 보는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빅3의 점유율이 75%라 하더라도 이것이 경품 때문에 유지되는 것인지, 아니면 (신문의 내용 등으로) 시장에서 자연적으로 이뤄진 것인지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여론을 좌우하는 매체는 신문보다는 방송과 인터넷이다. 방송을 포함한 전체 언론의 영향력 중 빅3가 차지하는 비중을 봐야 한다. 신문시장에만 집중된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 교수=방송과 신문은 다른 업종이라 별도로 논의해야 한다.

▽김 교수=아무튼 국내외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정부나 언론 모두 국가이익이라는 대명제에 대해 공통분모를 갖고 협조해야 한다. 지난 몇 개월간 불필요한 소모전이 많았는데, 지금부터라도 노 대통령은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언론의 비판 기능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 다만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추측성 왜곡보도에 대해 분명히 고쳐가야 언론의 질적 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또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신문시장의 어려움도 이해해야 한다.

▽유 교수=정부-언론 사이가 전쟁처럼 가면 결국 정부가 불리하다. 정부는 정책 수행 및 집행시 언론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언론과의 관계가 막히면 답답해질 것이다.

▽이 교수=언론의 속성은 비판해야 할 것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사회를 덜 부패하게 하고 잘못된 시스템을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정권이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조심하고 근신하면 정권 말기의 권력누수

현상도 막을 수 있다. 기왕 언론이 정권에 대해 비판적으로 나온 이상, 노 대통령도 이를 정권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정권 5년을 잘 보낼 수 있다.

▽유 교수=노 대통령은 앞으로 자신을 지지했던 집단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언론정책도 마찬가지로 ‘빅3’에 적대적이었던 지지세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정리=이승헌기자 ddr@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좌담 참석자 프로필▼


◆유재천 교수

△1938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미국 미네소타대 석사(강원대 명예사회학 박사)

△한림대 부총장 겸 언론정보학부 교수

◆김영석 교수

△1954년생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겸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효성 교수

△1951년생

△서울대 지질학과

△미국 노스웨스턴대 박사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겸 한국방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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