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지호/'제네바 실수' 되풀이 말길

  • 입력 2003년 4월 22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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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미국 북한 중국이 참여하는 북핵 3자회담이 열린다. 지난해 가을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래 반년 만의 일이다. 그토록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던 우리 정부가 빠진 것에 실망을 금할 수 없으나 여하튼 대화가 시작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베이징 회담 ‘북핵不容’ 명시해야 ▼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 이번 회담은 그야말로 ‘시작의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3일간의 회담 결과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회담의 지속 여부다. 이번 회담에서는 우선 18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성명에서 모호하게 표현되었던 폐연료봉 재처리 여부가 주요 의제로 다루어질 전망이다. 만일 준비작업이었을 뿐 실질적인 재처리가 이뤄지지 않았음이 확인된다면 미국은 폐연료봉 재처리 금지,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중지를 대화를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입북 및 봉인 재설치 등 원상회복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만일 북한이 미국의 이러한 요구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면 미국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대북 선제공격과 유엔을 통한 경제봉쇄를 추진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도라면 회담은 일단 성공적이라고 평할 수 있다.

그러나 혹시 북한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미국은 재처리작업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하는 한편 추출된 플루토늄과 아직 재처리되지 않은 폐연료봉을 IAEA 사찰단의 감시하에 제3국으로 반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 북한이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회담은 결렬될 수 있다. 그리고 금지선(red line)을 넘은 북핵 문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회부되어 경제제재 여부가 논의될 것이다.

물론 폐연료봉을 재처리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으나 여러 가지 의견차로 차기 회담을 기약하지 못하고 끝나는 시나리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번 회담이 어떻게 끝나든 북핵 문제의 해결은 어려운 과정을 예고하고 있다. 혹자는 이른바 ‘바그다드 효과’를 기대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동상이 이라크 민중에게 짓밟히는 광경을 목격하고 밤잠을 못 이뤘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제까지의 경직된 자세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18일의 북한 외무성 성명은 이 같은 기대를 무너뜨렸다. 이 성명의 가장 큰 특징은 북핵에 대한 북한의 공식입장이 전력생산을 위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서 전쟁 억지력 확보를 위한 군사적 수단 개발로 바뀌었다는 데 있다. 요컨대 김정일 정권은 이라크 충격에도 불구하고 ‘벼랑 끝 외교’의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최선의 시나리오는 제2의 제네바 기본합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즉 핵개발 프로그램의 부분적 포기를 통해 한미일 3국으로부터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이라는 대가를 획득하면서 핵개발 여지는 조금이라도 남겨두는 것이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는 경수로 2기를 지어주기로 약속한 2003년까지 북한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빌 클린턴 행정부의 안이한 정세 판단에 기초한 것이었다.

▼‘당근’만으론 문제풀기 어려워 ▼

이제 그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모든 핵 프로그램의 즉각적이고도 완전한 폐기만이 ‘벼랑 끝 외교’의 원천이 돼 왔던 핵개발을 둘러싼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의 뿌리를 근원적으로 제거해 한반도 평화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되 북한의 반응 여하에 따라서는 외교적 압박과 경제제재도 불사하겠다는 북핵 불용(不容)의 단호한 자세가 필수적이다. ‘당근’만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하기 짝이 없다.

이제 노무현 정부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집착한 나머지 의도적으로 미국과 엇박자를 내는 것이 결과적으로 한미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어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초래하고 오히려 전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한반도 국제정치의 패러독스’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신지호 KDI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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