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인권委, 對北결의안 채택]北核이어 人權도 국제이슈 부각

  • 입력 2003년 4월 16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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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권위가 대북 인권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북한의 인권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부상했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북한 인권상황이 심각하다는 국제적 공감대는 있었으나 이 문제가 유엔 등 국제기구의 공식 의제가 된 일은 없었다. 남북관계를 고려한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이슈화하는데 반대했기 때문.

그러나 이번 결의안은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HR)에 북한과 인권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 해결을 위한 국제적인 프로세스를 밟게 됐다. UNHCHR가 북한에 대화를 요구하면 북한 인권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본격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우리에게는 인권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어 유엔과의 인권 대화나 접촉을 거부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유엔 인권위는 후속 결의안 채택 등을 통해 북한에 압력을 가중시킬 전망이다. 한마디로 북한 인권상황이 유엔의 감시 감독 아래 놓이게 된 셈.

결의안을 제출한 유럽연합(EU)과 북한의 관계는 급속 냉각될 전망이다. 2001년 5월 당시 EU 의장국인 스웨덴의 예란 페르손 총리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북한과 EU는 관계 개선을 시도했었다. EU 15개국 가운데 프랑스와 아일랜드를 제외한 13개국이 북한과 수교했다.

그러나 북한이 EU가 수교 당시 기본 원칙으로 제시한 인권 개선 요구를 무시한데다 지난해 핵문제까지 일으키자 EU가 북한을 보는 자세는 냉담해졌다. 제네바의 외교 소식통들은 이번 결의안에서 북한이 ‘인권침해 국가’로 규정됨에 따라 북핵문제에 대한 EU 내의 여론도 더욱 강경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과 일본 등은 이번 결의안의 ‘공동 제안자(Co-Sponsor)’로 참여했다. 인권위 회의에서 북한을 ‘지구상의 지옥(Hell on Earth)’이라고 비난했던 미국은 결의안에 더욱 강한 문구를 담도록 EU측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EU측에 북한의 일본인 납치에 대해 ‘미해결 문제의 분명하고 투명한 해소’를 촉구하는 문구를 삽입하도록 요구했다. 탈북자의 북한 송환으로 국제 인권단체의 지탄을 받고 있는 중국은 이번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한편 이날 유엔 인권위 회의장에서는 한국 정부가 투표에 불참하자 의아해하는 각국 정부와 비정부기구(NGO) 대표들이 적지 않았다. 많은 제3세계 정부 대표들은 “불참의 정치적 의미가 무엇이냐”고 한국측에 은밀히 묻기도 했다.

옵서버로 참석한 일부 인권단체 대표는 “한국 정부가 미얀마 인권 결의안에는 찬성표를 던지고 북한 인권 결의안의 투표에 불참한 것은 이중잣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제네바=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투표 불참-결석-기권 의미▼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의 표결에 대한 의사표시 방법에는 찬성 반대 기권 등 3가지가 있다. 이번에 유엔 인권위에서 정부가 택한 ‘투표 불참(Non-Participation in Voting)'은 아예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것이다.

투표 불참은 회의장에 가지 않는 결석(Absent)과는 다르다. 회의는 참석하되 투표에만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기권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정의용 주(駐)제네바 한국 대표부 대사는 “기권은 하나의 정치적 의사를 택하는 것이지만 불참은 정치적 의사를 택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권도 찬반을 결정하기 어려운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처하는 방법이지만 더욱 미묘한 사안일 때는 투표 불참을 택한다는 것. 불참은 공식 기록에도 남지 않고 투표결과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북한이 핵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 회담에 유연성을 보인 것 등 북한의 최근 변화를 의식, 투표 불참을 통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와는 달리 유럽연합(EU)의 대북 인권 결의안 제출 자체는 반대하지 않았으나 앞으로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가급적 조용하게 가겠다는 방침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제네바=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이 하는 일▼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HR)을 운영하면서 유엔 내 인권 관련 활동을 총괄하는 직책(유엔 사무차장급). 유엔 산하 인권위원회(UNHRC) 등 인권 관련 기구의 활동을 지원한다. 이번 제59차 UNHRC가 결의안을 채택함에 따라 인권고등판무관은 북한 당국에 인권 문제와 관련한 대화를 요구하는 한편 앞으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 감독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1993년 오스트리아 빈 세계인권회의의 권고에 따라 유엔 총회 결의로 신설됐다. 임기는 4년, 1회 연임이 가능하다. 지난해 7월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에 이어 세르기오 비에이라 데 멜로 동티모르 유엔 행정관(55)이 제3대 인권고등판무관으로 임명됐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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