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청와대 새 취재시스템 삐걱

  • 입력 2003년 3월 6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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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희 청와대 대변인이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의 이중국적문제 처리 방안 등에 관해 브리핑하고 있다.-연합
송경희 청와대 대변인이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의 이중국적문제 처리 방안 등에 관해 브리핑하고 있다.-연합
청와대가 새로 도입한 개방형 취재시스템이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새 정부는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제도를 활성화하는 대신 비서실을 직접 방문해 취재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대변인 브리핑이 부실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새 제도가 결과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접근권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높아진 취재 장벽=청와대는 새로운 취재시스템의 핵심으로 기자실 문호 개방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비서동 방문 취재는 금지했다. 종전에는 오전과 오후 1시간씩 하루 두 차례 기자들에게 비서실 출입을 허용했다.

그러나 기자실의 문호를 완전 개방하면 출입기자 수가 늘어나면서 경호상의 이유 때문에 비서실 출입을 금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는 기자실을 일정 자격요건을 갖춘 언론사에 완전 개방할 경우 청와대에 출입하는 등록기자 수가 200명선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춘추관의 기자실에 있는 부스를 모두 없애고 강의실 스타일의 기사작성실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비서실 취재가 사실상 금지되면서 기자들은 하루 두 차례의 대변인 브리핑만 쳐다보는 신세가 됐고 ‘개방형’ 취재시스템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취재 장벽은 더욱 높아졌다.

청와대는 사전에 대변인실에 서면으로 면담신청을 하면 해당 취재원이 춘추관의 면담실로 와 취재에 응하는 방식을 도입했으나 10여일이 지난 현재 이를 활용하는 기자는 거의 없다.

공식면담을 신청하면 누구를 만나 무엇을 취재하는지가 사전에 드러나고 취재원 입장에서도 자신이 노출되는 상황에서 깊은 취재에 응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게다가 면담신청이 들어오더라도 취재에 응할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취재원이 결정하는 것이어서 현실적으로 ‘신청해봤자 별 기약 없는’ 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탓에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공급자 위주의 제도다” “대통령을 상대로 헌법소원이라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무늬’만 백악관 스타일=청와대가 새로 도입한 취재시스템은 상당 부분 미국 백악관의 방식을 빌려온 것이다. 홍보수석비서관과 대변인을 분리한 것이나 대변인의 정례브리핑 제도를 활성화하겠다는 것 등은 모두 지금 백악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현재의 청와대는 그런 제도가 제대로 가동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준비는 매우 부족하다는 게 기자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정례브리핑 제도의 경우 오전 11시와 오후 3시 두 차례 시행되지만 각 수석비서관실이 사전에 대변인에게 자료 제공을 하는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6일 오전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에 안건으로 올랐던 ‘청남대’ 반환 문제의 경우 이미 청남대를 별장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 분명하게 서있었는데도 대변인은 그 같은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

더욱이 외교분야나 경제분야의 전문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해당 비서관실의 보조브리핑이 꼭 필요하지만 그 같은 준비는 전무한 상황이다.

따라서 정례브리핑의 부담이 대변인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면서 대변인이 잘 모르면 그걸로 끝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은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에 제기됐던 “주는 것만 받아 쓰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부실한 브리핑=나종일(羅鍾一)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의 대북 접촉 사실이 밝혀진 5일 청와대의 브리핑은 이 같은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사건의 당사자인 나 보좌관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브리핑을 거부했고 송경희(宋敬熙) 대변인은 부족한 정보만으로 빗발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진땀을 빼야 했다.

거기에다 송 대변인의 자의적인 해석이 가미되면서 기자들의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노 대통령이 나 보좌관의 대북 접촉 사실을 사전에 알았느냐는 질문에 송 대변인은 “그거야 알았겠죠”라고 답했고 확인 질문이 재차 쏟아졌다. 그러자 송 대변인은 “사전에 그 같은 지시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후퇴했다.

송 대변인이 이전에 노 대통령과 함께 활동을 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의도나 스타일, 그리고 과거의 발언을 모르다 보니 기자들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거나 “확인해서 알려주겠다”는 답변이 잇따르는 등 만족할만한 브리핑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노 대통령에게도 보고됐으며, 홍보수석실은 송 대변인의 브리핑 부담을 줄이는 방안 등 보완책을 마련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청와대는 최근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과 정찬용(鄭燦龍) 인사보좌관 등이 브리핑에 나선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보고 사안에 따라 해당 수석비서관이나 보좌관이 직접 설명하는 기회를 늘리기로 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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