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민주, 公기업에 당직자 임명시스템 추진

  • 입력 2003년 1월 21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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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민주당이 ‘개혁이 필요한 공기업’과 정부 산하기관에 민주당 당직자들을 상당수 추천할 방침이어서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인수위와 민주당은 과거 밀실에서 이뤄진 공기업 인사를 공개적인 절차를 밟아 시스템에 따라 운용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원내 정당화를 목표로 당의 몸집을 줄이는 과정에서 공기업을 ‘인사 숨통’의 창구로 활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인수위가 구상하는 공기업 인사시스템=인수위는 공기업을 △수익을 내야 할 곳 △공익성이 강조되는 곳 △개혁이 필요한 곳 등 3그룹으로 구분하고 개혁이 필요한 공기업에 민주당 당직자들을 추천하는 것을 뼈대로 한 공기업 인사시스템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인수위는 먼저 임기가 임박한 공기업 사장과 감사 등 간부들에 대한 인사 파일을 챙기면서 인선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 고위관계자는 “대학도 총장이 바뀌면 보직교수들이 일괄 사표를 내는 게 관행”이라며 “임기가 보장된 공직의 경우 당사자들의 뜻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공직자들도 사표를 내는 게 마땅하다”며 사실상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당직자의 전공과 능력 등을 종합 검토해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선별하고 선거 때의 기여도도 많이 고려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추천권을 한 두 사람이 행사하지 않고 당 인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기로 했다.

▽신종 ‘낙하산 인사’ 논란=그러나 이 인사시스템이 ‘신종’ 낙하산 인사로 흐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치권의 공기업 진출을 ‘제도화’하겠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수위는 이런 비판을 고려해 ‘개혁이 필요한 공기업에 한해 민주당 인사를 내려보낸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 또한 논란거리다.

특히 민주당이 원내 정당화를 목표로 대대적인 당 조직 감축을 앞두고 있어 이 과정에서 당에서 축출되는 당직자들을 ‘소화’하는 차원에서 공기업을 활용할 경우 노조측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높다. 인수위측은 민주당이 추천했다고 해도 적임자가 아닐 경우 해당 공기업에서 거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정부개혁 방침과도 배치=경제전문가들은 ‘공기업 개혁의 핵심이어야 할 효율성과 전문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발상’이라며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김석준(金錫俊)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은 정치적 책임을 지는 자리에 가야 하는데 공기업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책임을 지는 곳이 아니다”며 “경영 마인드가 부족한 정치인이 낙하산으로 내려가면 해당 공기업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지난해 12월 선대위 당직자 연찬회에서 공기업 인사와 관련해 “낙하산 인사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책임정치 구현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나성린(羅城麟)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기업은 전문성과 개혁성 양쪽 모두 필요한 곳”이라며 “민주당 정권의 당직자 가운데 이 둘을 모두 갖춘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지금까지 역대 정권은 현실적 필요 때문에 정치인을 보내면서도 최소한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인정하고 ‘쉬쉬’해온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정작 노무현 정권은 공개적으로 낙하산 인사 시스템을 굳히겠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없지 않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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