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의 '盧 지지 철회' 진짜 속내는?

  • 입력 2002년 12월 19일 16시 51분


대선 막판의 최대 변수로 돌출한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의 노무현(盧武鉉) 후보 지지선언 철회의 배경을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 추측이 무성하다.

당내에서는 추상적 명분보다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을 따져본 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면 지체없이 행동에 들어가는 정 대표 특유의 스타일을 파국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노 후보에게 승산이 없을 것이란 계산 아래 공조파기의 타이밍을 노렸던 것'이란 분석을 포함해 갖가지 관측이 분분하게 나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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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론= 일단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유지하던 노 후보가 투표 2, 3일을 앞두고는 정 후보의 '이탈'은 불가능하다는 착각 아래 집권 이후에 관한 감춰진 속내를 잇따라 드러낸 것이 파국의 직접적 계기라는 것이 정 대표측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설명이다.

노 후보가 16일 유세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가 대북 현금지원을 중단하라고 하는데 그러면 남북관계도 대화도 끊긴다"고 말하자 정 대표는 민주당측과 통합21이 공동서명(12일)한 정책합의문의 '핵개발 의혹 해소전 현금지원 중단 고려' 대목을 상기시키며 진의파악을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같은날 마지막 TV합동토론에서 노 후보가 "교육문제는 철학이다. 양보 안한다"며 노-정 정책공조를 무효화하는 듯한 발언을 한 데 대해서도 마찬가지. 또 이날 노 후보가 통합21의 핵심당직자와 잠시 만나 "대통령이 되면 당 개혁위원회를 구성해 완전히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고 말함으로써 정 대표측은 노 후보가 대선 승리 이후 '개혁세력'의 헤게모니 확보를 위한 구상을 마쳤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노 후보가 17일 한 인터넷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단일화 이후 협력관계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했는데 정 대표가 '선거기간 중 협력'을 내걸기에 거절하기 어려워 '선거협력이야 할 수 있다'고 승낙했다" "구속받을 만한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는 등 공동정부식 국정운영 합의를 일축한 것도 정 대표측을 자극했다는 후문이다.

평소 "공조에서 중요한 것은 신뢰" 라고 말해온 정 대표는 18일 저녁 서울 종로4가 음식점과 자택에서 당직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연거푸 통음(痛飮)하며 깊은 '배신감'을 토로했다는 후문이다.

▽성격론= 상황적 요인보다는 '권력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는 속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정 대표의 정치스타일과 기업가 출신다운 성격이 보다 큰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 대표는 "단일화는 대국민 약속이므로 설사 집권 이후 당하더라도 이를 앞서 파기하는 것은 부담을 자초하는 일"이라는 상당수 당직자들의 만류에 "안될 줄 알면서 공조한다고 계속 떠드는 것이야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고 한다.

한 측근은 "단일화 승복이라는 역사적 기록은 정 대표의 5년뒤 '꿈'을 위해 버릴 수 없는 자산이다. 일반적인 정치인이라면 이를 지키는 데 연연할 것이다. 그러나 정 대표는 (금이간 공조를 지키는 것이)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히 버리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주어진 현실적 데이터들을 갖고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 '아니다'는 답이 나오면 명분이니 장래니 하는 불확실한 세계에 미련을 두지 않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현실론자'라는 얘기다.

정 대표측 관계자들은 정책조율에 대한 정 대표의 고집스러울 정도의 집착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한다. 한 고위당직자는 "정책이야말로 정치인이 내놓는 대국민 계약서라는 게 정 대표의 인식"이라며 "이것이 하나둘씩 눈앞에서 내팽겨쳐지는 것을 목도한 정 대표로서는 더 이상 집권 이후 약속들이 지켜질 것이라고 믿을 근거를 상실한 셈"이라고 말했다.

▽음모론= 당안팎에서는 "약속 때문에 마지못해 공조에 응했다가 노 후보측 언행을 빌미 삼아 공조를 깨뜨린 것"이라는 '준비된 파경설'에서부터 한나라당 공작 및 현대가(家) 의 강한 공조 포기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소문, 여권의 공작에 의해 단일화에 발목이 잡혔다가 의혹의 일단이 드러나자 미련없이 돌아섰다는 등의 각종 음모설까지 난무하고 있다.

일부 당직자들은 처음부터 "25%의 지지율을 갖고 후보직을 포기하는 것은 향후를 생각할 때 미친 일이다"며 단일화 자체에 반대했고, 유세공조가 시작된 이후에도 "노 후보가 당선될 경우 정 대표는 철저히 '해체' 대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18일 오후 들어 일부 비공개 여론조사에서 1~2% 포인트 정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 것도 정 대표의 '결심'을 재촉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현대 계열사들과 정 후보의 정치적 장래 문제를 앞세우며 파상적으로 공조철회를 요구해온 한나라당측의 물밑 설득작업이 먹혀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 '정몽준 대안론'을 내세운 여권 인사들의 중재로 시작된 단일화 여론조사 작업에 청와대 일부 인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 대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있다.

▽향후 행보= 정 대표의 한 측근은 "단일화 당시에도 노 후보에게 의탁해서 5년후를 기약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집권 2인자라는) 개인적 이해를 포기하면서 어려운 결심을 내리게 된 정 대표를 국민도 점차 이해하게 될 것"이라며 "며칠간 휴식한 뒤 빈 마음으로 가까운 분들과 진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장기 외유설'이나 '정계은퇴설'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한 당직자는 "자해행위나 다름없는 이번 결정은 정치를 그만하겠다는 내심의 표현"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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