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길 추진위장 사의 안팎]민주 신당 주도권 힘겨루기

  • 입력 2002년 8월 12일 18시 36분


민주당 신당준비추진위원장인 김원길 의원이 12일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신당의 ‘청사진’을 밝히고 있다. 김 위원장은 회견 후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박경모기자 momo@donga.com

민주당 신당준비추진위원장인 김원길 의원이 12일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신당의 ‘청사진’을 밝히고 있다. 김 위원장은 회견 후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박경모기자 momo@donga.com

민주당 김원길(金元吉) 신당추진준비위원장이 임명 이틀만인 12일 추진위의 위상에 불만을 표시하며 사퇴 의사를 밝혀 신당 추진 작업이 초반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 기자회견을 갖고 신당의 이념은 ‘중도노선’이며 분산형 권력구조를 지향한다는 등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신당추진준비위에서 개헌 문제도 다루고 창당 발기인 추천과 함께 신당의 대통령후보 경선 방식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신당추진준비위가 신당 추진 절차나 스케줄 마련뿐만 아니라 정강정책의 기초 작업 및 외부인사 영입 등 신당의 방향과 골격을 만드는 일을 주도하겠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나아가 “신당의 지도부는 ‘소수 단일성 집단지도체제’ 정도가 좋다고 생각한다”며 민감한 지도체제 문제까지 언급했다.

김 위원장의 사퇴 소동은 이 얘기를 전해들은 일부 최고위원들이 “신당추진준비위는 실무기구인데 그 위상과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고 반발하면서 비롯됐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소식을 접한 김 위원장은 “그 정도의 위상과 성격이라면 굳이 추진준비위를 구성할 필요가 없으며 중앙당 사무처 단위에서 실무팀을 꾸리면 된다. 굳이 내가 맡을 자리가 아니다”며 한화갑(韓和甲) 대표에게 사의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다시 기자실을 찾아와 “신당추진준비위가 외부인사 영입 같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신당의) 정강정책만 준비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신당에 참여할 발기인이 누가 될지도 모르는 데 누구와 협의해 정강정책을 만들라는 얘기냐”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이날 소동은 신당추진준비위의 위상을 둘러싼 단순한 시각차의 문제라기보다 신당의 주도권을 둘러싼 당내 각 계파간 힘겨루기가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신당 참여인사 영입 창구를 놓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와 한 대표를 중심으로 한 주류측과 박상천(朴相千) 최고위원-정균환(鄭均桓) 원내총무 주축의 중도세력간에 미묘한 갈등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그런 기구라면 (외부 세력 영입을 맡은) 당 발전위원회에 분과 하나를 더 만들든지, 정강정책소위라고 할 것이지 무엇때문에 신당추진준비위라고 했나”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당 발전위는 박상천 최고위원이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박 최고위원측은 이와 관련,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을 비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당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이날 회견에서 ‘중도노선’ ‘분산형 권력구조 개헌’ ‘자민련과 합당 검토’ 취지 등의 언급을 하자 노 후보측이 반발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노 후보측 핵심참모는 “사퇴 얘기를 듣고 노 후보가 김 위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만류했다”고 부인했고 김 위원장도 “노 후보와의 갈등 때문에 사의를 표명한 것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사퇴 소동이 벌어지자 당초 예정에 없던 최고위원회의를 13일 소집해 신당추진준비위의 위상과 권한 및 김 위원장 사퇴 문제 등을 논의키로 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김원길의원 일문일답▼

12일 민주당 신당창당추진준비위원장직을 맡은 지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김원길(金元吉) 의원은 “굳이 내가 맡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의를 표명한 정확한 이유는 뭔가.

“오늘에서야 신당추진준비위가 외부인사 영입 같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신당의) 정강정책만 준비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기구라면 당 발전위원회에 분과 하나를 더 만들든지, 처음부터 정강정책소위라고 정했으면 되지 뭐하러 창당추진준비위라고 했나. 신당에 참여할 발기인이 누가 될지도 모르는데 누구와 협의해 정강정책을 만들라는 얘기인가.”

-신당추진위의 권한 확대를 요구하는 것인가.

“권한 확대와는 상관없다. 위원장직 제의를 받고 이틀 동안 내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다. 당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생명을 걸고 전력투구하려고 했다. 신당의 방향이나 사람문제는 얘기 못하게 하고 정강정책만 만드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이 해도 된다는 뜻이다.”

-신당의 노선을 ‘중도노선’으로 규정한 데 대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강하게 반발했다는 얘기도 있는 데….

“절대로 아니다. 사실은 노 후보가 나를 위원장으로 추천했다. 가급적 안 맡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미 발표를 했다고 해서 수락했던 것이다.”

-김 의원이 위원장을 맡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기꺼이 사퇴하겠다. 이 자리는 좋은 자리도 아니고 권력이 있는 자리도 아니다. 누가 맡더라도 참으로 어려운 자리다. 작지만 내가 갖고 있는 여력을 다 투입하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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