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風에 대선구도 급변]“국민이 정말 무섭다”

  • 입력 2002년 3월 21일 18시 19분


‘노무현(盧武鉉) 돌풍’은 단순히 민주당 내부의 ‘이변’에 그치지 않고, 대선구도 전체를 뒤흔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던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지지도가 급락해 최근에는 노 후보에 20% 이상이나 뒤지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오고 영남권, 특히 부산 경남(PK) 지역의 동요 조짐까지 감지되면서 한나라당 관계자들조차 ‘노풍(盧風)’의 위력에 경악하고 있다.

▽이 총재 지지율 왜 급락하나〓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40% 안팎에 이르던 이 총재의 지지율이 불과 1주일 사이에 30% 초반까지 떨어지고, 노 후보와의 격차 또한 ‘믿기 어려울 만큼’ 벌어진 원인에 대해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노규형(盧圭亨) R&R 대표는 “이 총재 자체의 지지도 하락폭은 평균 5% 정도에 불과하며 이는 노 후보의 급상승에 따라 상대적으로 위축돼 보이는 일시적 단기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즉 노 후보의 ‘경선효과(Convention Effect)’와 이 총재의 호화빌라 논란으로 정치에 냉소적이던 부동층이 노 후보 지지층에 유입됐을 뿐이라는 얘기다.

반면 ‘오픈 소사이어티’ 김행(金杏) 대표는 “고유한 자기 표가 없던 이 총재가 노 후부의 부상과 함께 지지기반의 허약성을 드러낸 것”이라며 ‘구조적 장기적 현상’으로 해석했다. 이 총재는 지난 1년여 동안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고문과의 단순 대결구도에서 안정적 우세를 유지해온 까닭에 일종의 ‘신기루’에 싸여 있었다고 지적했다.당내에서는 이 총재의 리더십이나 정치스타일에서 요인을 찾는 목소리가 많다. 최병렬(崔秉烈) 부총재는 “외부적 요인보다는 당내 요인이나 (호화빌라 및 가족문제 같은) 이 총재의 개인적인 문제가 대선의 승패를 가를 수 있다”고 말했다.

▽97년 상황과 닮은꼴인가〓그 때문인지 한나라당 내 일각에서는 이 총재의 97년 대선 직전 상황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빌라 문제나 손녀의 ‘미국 원정 출산’ 논란은 그 당시의 아들 병역 문제와 마찬가지로 유권자들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악재라는 것이다.

실제 97년 7월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 직후 50%를 웃돌았던 이 총재의 지지율은 아들의 병역면제 파문이 불거지면서 10%대로 급락했다.

그러나 당내 주류측은 현 상황은 97년 대선 때와 다르다고 보고 있다. ‘노풍’으로 타격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35% 안팎의 ‘이회창 지지도’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승민(劉承珉) 여의도연구소장은 “정작 움직인 것은 부동층이지, 확고한 이 총재 지지층은 아니다”고 주장했다.또 특정 후보의 지지율이 50%를 넘는 것은 일시적인 ‘이상과열’ 현상이므로 앞으로 조정기를 거치면 달라질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기대이다.

▽‘노풍’은 일시적 현상인가〓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정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표출된 것이라는 분석은 일치한다. 노 후보의 강한 개혁성향이 정치권에 식상해있던 20, 30대 젊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끄는 기폭제 역할을 했고 그동안 ‘이회창 대세론’에 안주하던 영남권에서도 주위의 분위기에 편승하는 ‘밴드 왜건(Band Wagon)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 후보의 급상승세에 일정 부분 ‘거품’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나 거품이 걷히면 노 후보의 지지도가 급락할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얘기다.

안충섭(安忠燮) 여의도 리서치 대표는 “30대 유권자층이 노 후보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며 “30대의 지지성향은 20대와 40대층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은 핵심지표여서 노 후보의 거품이 어느 정도 걷힌다 해도 이 총재와 박빙의 승부를 겨룰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PK 정서, YS 기류〓회사원 박모씨(32·부산 부산진구 전포동)는 “(민주당) 부산 경선을 두고봐라”며 요즘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뭔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부산 출신의 한 재선의원은 “이 총재가 당내분 수습 과정에서 시국인식에 문제점을 드러냈고, 이 총재의 카리스마가 많이 허물어졌다는 인식이 동료의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김기춘(金淇春) 의원은 “노 고문은 DJ 정권의 후계자라는 점을 적극 부각시키면 거품이 빠질 것이다”고 주장했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공개적 언급은 피하고 있으나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 의원은 “YS와 노 고문은 각별한 인연이 있다. YS는 현 구도변화를 관심있게 지켜보면서 때가 되면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연합뉴스 관련기사▼

- 대선정국 '盧風' 맹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