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남북행사 무산]‘민간교류→당국간대화’구상차질

  • 입력 2002년 2월 27일 18시 50분


북한이 통일연대의 불참을 트집잡아 ‘2002 새해맞이 남북 공동행사’를 무산시킴으로써 당초 이 행사를 올해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로 삼으려던 정부의 구상은 큰 차질을 빚게 됐다.

▽공동행사 무산 배경〓북한은 우리 정부가 통일연대 소속원 40명에 대해 대규모 방북 불허조치를 취한 점을 행사결렬의 주된 이유로 들었다. 이는 이번 행사에 대해 북한이 민간교류 활성화란 당초 취지외에 다른 목적을 갖고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즉, 통일연대가 빠진 상황에서는 원하던 반미(反美) 분위기 조성 등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없음을 북한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통일연대는 범민련 남측본부, 한총련, 민주노총 등 20여개 단체의 연합체로 참가 세 단체 중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색채를 갖는 단체.

실제 북한은 27일 오전 내내 7대 종단 및 민화협 대표단과 우리 정부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두 단체 대표들의 강경한 거부자세 때문에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이런 남측 단체들의 강경자세에 비추어 행사를 진행해봐야 실익을 거두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흥미있는 대목은 북한이 특히 통일연대 소속원에 대한 우리정부의 방북불허에 대해 ‘미국의 계획적인 파괴음모 책동’이라고 미국을 비난한 점이다. 이는 결국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이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는 불만을 간접 표출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남북관계 전망〓정부는 이번 공동행사에 이어 북한이 4월말부터 개최할 ‘아리랑 축전’에 민간단체들을 참가시킴으로써 남북 민간교류 분위기를 조성한 뒤 당국간 대화로 이어간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이번 행사결렬조치를 통해 북한이 “현재로선 대화해봐야 득될 게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음이 명백히 드러난 만큼 남북관계의 소강상태는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따라서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돌파구로 해 경협추진협의회를 통한 대북지원→각종 분야별 남북당국회담 개최→장관급회담 개최→햇볕정책의 성공적 마무리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상정했던 정부는 새로운 돌파구를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지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다만 정부와 민간단체들은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 여지를 남겨놓았다는 점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북한측 성명이 공식적인 정부 입장이 아니라 민간단체 대표단의 입장을 밝히는 형식으로 발표된 데다 내용도 우리 정부에 대한 직접공격을 삼가는 신중한 톤이었기 때문.

또 북한 대표단이 금강산 현지에 대기하는 등 당초에는 상당히 성의있는 자세를 보였고 행사무산결정 직전까지도 남측 대표단과 수시로 접촉해 향후 민간교류 대책을 논의했다는 점도 기대를 걸게 하는 대목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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