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총재 신년 인터뷰 "선거 이기려는 꾀-술책 안통해"

  • 입력 2002년 1월 2일 18시 23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선거에서의 페어 플레이를 여러 번 다짐했다. 이 총재 본인이 신년사에서 새해 화두로 내세운 ‘법과 원칙이 살아 숨쉬는 반듯한 나라’도 페어 플레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문답 요지.

-정치입문을 하기 직전인 96년 정초에도 첫 신년인터뷰를 동아일보와 했는데, 꼭 6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경험도 했고 풍상과 곡절도 겪었죠. 이제야말로 우리나라의 정치가 바로 서고 나라의 운명을 개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동아일보사는 올해 어젠다로 ‘페어 플레이’를 선택했습니다.

“정말 잘 선택했습니다. 페어 플레이의 요체는 공정성입니다. 공정성은 정의사회를 지향하는 것이지요. 너와 내가 다섯씩 나눠 갖는 것이 공정할 때도 있지만, 7 대 3이 돼도 공정할 때가 있습니다. 국민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의 정치와 선거가 공정하지 못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야당도 책임이 있지만, 근원적으로 집권세력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정권도 정권을 잡은 후 우리 당 소속 의원 30여명을 빼갔고 권력의 힘을 빌려 ‘세풍’ ‘총풍’ ‘안풍’ 등 기억하기도 싫은 일을 저질러 야당을 압박했습니다.”

-올해 선거는 과거에 비해 공정하리라고 보십니까.

“그러기를 바라지만 걱정도 합니다. 정권을 놓기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여당이) 선거에 이기기 위해 꾀와 술책을 부려 또 한 번 추잡하고 불쾌한 양상이 일어날까 걱정입니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 등이 공정선거를 다짐하는 선언을 할 계획은 없습니까.

“대통령도 공정선거 관리 약속을 했지만, 말보다는 신실한 행동이 중요합니다.”

-이 총재께서는 ‘통합과 화해’도 강조해 왔습니다. ‘반듯한 사회’를 만들려면 깎고 자르고 다듬고 해야 하는데,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킬 생각입니까.

“두 가지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반듯한 사회는 ‘법의 지배’를 확립한 바탕 위에서 사회를 올바르게 끌고 가자는 것입니다. 그 바탕 위에서만 공정한 게임의 룰이 확립되고, 시장경제원리대로 경제가 발전합니다. 지금 경제가 어려워진 것도 부정부패 때문입니다. 권력형비리가 국민에게 돌아갈 부를 횡령했지요. 빈자와 부자의 갈등, 세대간 위화감, 어느 연령층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는 사고가 우리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데, 이를 극복하고 통합과 화해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시무식에서 ‘더 이상 정치보복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정치보복 금지는 말로만 해서는 안되고 스스로에게 맹세하고 역사 앞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권을 잡은 사람은 검찰권을 자신의 수족으로 쓰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되지만, 우리는 이를 철저히 포기하고 국민에게 검찰권을 돌려주겠다고 맹세하고 다짐했습니다.”

-매년 경제성장률이 연 6%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구체적인 방안이 있습니까.

“관치경제의 관행을 끊어 부정부패의 소지를 없애야 하고,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도 과학기술 개발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는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또 이런 정책들을 일관성 있게 목표를 세우고 추진해나갈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법조인 이 총재와 정치인 이 총재는 달라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전적으로 오해입니다. 내가 법관 재직시 약자, 소외된 자, 핍박받는 자 등에 대해 가졌던 관심과 권리와 인권을 존중한 정신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당이 가진 자와 대기업에 기운 것이 아니냐는 것은 그동안 선거에서 상대당이 이용한 정치적 공격의 주 메뉴였죠. 재벌개혁에서도 지배구조의 개선 문제 등에 대해선 우리 당이 여당보다 더 재벌에 매섭고 가혹한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주식투자를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통상적인 주식투자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벤처기업을 방문했을 때 창업을 격려하는 의미로 100주를 산 일이 있었지만 그 이후 주가가 올랐는지 내렸는지 모릅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존경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역대 대통령들은 그 시대와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각자 평가받을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개헌은 당장 할 것은 아니다’, ‘대선 전에 하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말했는데, 시기 문제를 말한 것인가요.

“복잡한 의미는 없습니다. 지금 제기된 개헌론이 대선 전에 하자는 것이어서 이에 반대한다는 얘기입니다.”

-정치권 안팎에서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단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하십니까.

“5년 단임제도 문제가 있지만, 4년 중임제도 재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너무 빨리 시작하는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제도마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정말로 개헌을 하고자 할 때에는 신중하게 국민의 의사를 물어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개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문제의 시급성에서조차 적절치 않습니다.”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은 어떻게 치를 생각입니까.

“우리 당이 야당이 된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화합과 단결을 이뤄온 것은 신한국당 때 경선에 이어 야당이 된 뒤에도 자유로운 경선에 의해 총재를 뽑았고, 그 총재가 당을 이끌어왔기 때문입니다. 총재가 과거처럼 대통령이 지명하거나 낙점한 총재였다면 야당으로 전락한 뒤에 당이 풍비박산됐을 것입니다. 대선후보 경선도 완벽하게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를 것입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했는데, 한나라당은 김 대통령에 대한 불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총재직 사퇴 후 공정하게 나라를 이끌겠다는 구체적인 의사를 보여야 합니다. 내각을 유능하고 전문적인 사람으로 구성해서 누가 봐도 중립내각이라고 할 만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공정선거 의지도 인정될 것입니다. 레임덕을 가져온 가장 큰 이유인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엄정한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검찰에 맡기고 있지만 처리과정을 보면 중요한 증인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부정부패 척결에 엄정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게 합니다. 대통령은 분명한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 걸 대통령을 직접 만나서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까.

“물론 대통령을 직접 만나서 얘기하면 더 효과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만날 겁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과연 만남이 만남만으로 그치지 않고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개각과 관련해서 마땅한 사람들을 추천할 생각은 없습니까.

“우리 사회에는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하고 소명감을 갖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대통령이 마음을 비우고 정말로 나라를 바로잡고 화합과 통합을 통해 의미 있는 새 시대를 열겠다는 각오를 갖고 설득한다면 그런 분들이 응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대권도전선언을 하지 않았는데, 언제쯤 공식적으로 밝힐 생각입니까.

“(웃으면서) 좋은 시기가 있으면 얘기해 주세요.”

정리〓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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