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돈 리스트 파문]"사느냐 죽느냐" 대충돌 예고

입력 2001-01-09 18:49수정 2009-09-2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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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리스트 공개가 가져올 정국파장을 점치기는 쉽지 않다.

180명의 15대 총선 후보들의 안기부 돈 수수액수까지 밝히고 있는 이번 리스트 공개는 사건의 외형부터가 너무 크다. 무엇보다도 여권의 대응에서 예전과는 다른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민주당은 9일 이번 사건을 ‘안기부예산 횡령 총선살포사건’이라고 공식 명명하면서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은 국가예산의 횡령 위에 세워진 정당이었음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김중권(金重權)대표도 “여든 야든 관련자들은 검찰에 출두, 조사를 받고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해 여권의 강경기류를 전했다.

여권이 ‘정쟁(政爭)을 지양하겠다’고 하면서도 이처럼 정치적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고 대야(對野)공세로 치닫는 배경은 뭘까.

여권은 국민의 혈세, 그것도 안보예산을 횡령한 중대범죄인 이번 사건 수사는 ‘정쟁’과 무관하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한나라당은 수사 동기와 목적의 순수성에 대해 짙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요컨대 이번 사건 수사는 한나라당 의원 대부분을 겨냥한 ‘제거전략’의 일환으로, 그 끝은 한나라당 와해와 정계재편, 그리고 DJP의 정권재창출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과거 ‘총풍(銃風)’수사나 ‘세풍(稅風)’수사 때보다 훨씬 강도 높게 사활(死活)을 건 투쟁의지를 다짐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새해 들어 여권 핵심인사들이 잇따라 “더 이상 야당에 국정의 발목을 잡혀서는 정권 전체가 궤멸한다”며 야당에 대한 ‘적의(敵意)’와 ‘전의(戰意)’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데서 이미 예사롭지 않은 ‘신(新) 사정정국’의 조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여권이 ‘이회창(李會昌)체제의 한나라당’과는 근본적으로 ‘상생(相生)의 정치’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작년 말 ‘강한 여당’을 내세운 민주당 김중권대표 체제가 출범한 이후 ‘의원 꿔주기’→‘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사건 수사→제2차 DJP공조체제 출범→‘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리스트 공개 등이 잇달아 터져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의심과 불신을 더욱 깊게 했다.

그렇다면 그 끝은 어디일까. 정말 한나라당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야당 파괴를 통한 DJP정권 재창출일까. 당장 그렇다고 단정할 만한 근거는 없다.

그보다는 올해한해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일을 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이고, 4대 개혁과 하반기 경제회생에 정권의 명운(命運)이 걸려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 한해만이라도 야당의 손발을 묶어 놓겠다”는 여권의 의지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분석이 훨씬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검찰 수사가 비록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고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강삼재(姜三載)한나라당 부총재 등 YS 집권 당시 민주계 집권핵심세력을 타깃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리스트 정국’ 또한 ‘3김(金)1이(李)’의 각축구도로 흘러갈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차기 대선의 향배를 결정짓는 변수 또한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리스트 공개 이후 한나라당 의원들은 주류 비주류 가릴 것 없이 대여공세의 전면에 나서는 등 오히려 결속력을 강화하고 있어, ‘야당 묶어두기’도 수월치 않을 것 같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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