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과 운보, 절친했던 두 巨人 같은병원 한층서 투병

  • 입력 2000년 12월 25일 19시 16분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시인이 타계 전 입원했던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의 같은 층(19층)에는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화백이 입원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미당의 입원실이 1912호, 운보가 1907호실이었다. 문단과 화단의 양대 거목이 한 달 가까이 지척거리에 있었던 것. 인연치고는 묘한 인연이었다.

미당 가족들에 따르면 이들은 평소 아는 사이로 지난주 초 잠시 기력을 찾았던 미당이 휠체어를 타고 운보 병실을 찾은 적이 있다. 미당이 “사람을 알아보느냐”고 운보의 간병인에게 물었지만 의식이 없다는 대답에 “깨어나시면 보자”고 돌아왔다. 이 자리에서 “운보는 천재야…”라고 말했던 미당은 며칠 만에 먼저 세상을 떴다.

그 후 운보는 오히려 상태가 호전돼 가족들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채근할 정도라는 게 주위의 말. 미당의 사망소식을 들은 운보의 아들 김완씨는 “생전 문인과 교류가 많았던 부친은 전부터 미당의 시가 제일이라고 말해왔다”며 안타까워했다.

나이는 미당이 운보보다 한 살 적지만 두 사람의 생애는 무척 닮았다. 두 사람 모두 일제강점기말에 친일 시비에 휘말렸던 점, 말년까지 식지 않는 열정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여 각각 1000여편의 시와 2만여점의 그림을 남긴 점, 예술가로서 꽤 장수했던 점 등이 공통점이다.

미당은 ‘입에서 나오면 모두 시’라는 달관의 경지를, 운보는 ‘붓만 대면 모두 그림’이란 대가의 경지를 각각 보였다. 미당이 ‘문단의 운보’라면, 운보는 ‘화단의 미당’이었던 셈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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