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가족들에 따르면 이들은 평소 아는 사이로 지난주 초 잠시 기력을 찾았던 미당이 휠체어를 타고 운보 병실을 찾은 적이 있다. 미당이 “사람을 알아보느냐”고 운보의 간병인에게 물었지만 의식이 없다는 대답에 “깨어나시면 보자”고 돌아왔다. 이 자리에서 “운보는 천재야…”라고 말했던 미당은 며칠 만에 먼저 세상을 떴다.
그 후 운보는 오히려 상태가 호전돼 가족들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채근할 정도라는 게 주위의 말. 미당의 사망소식을 들은 운보의 아들 김완씨는 “생전 문인과 교류가 많았던 부친은 전부터 미당의 시가 제일이라고 말해왔다”며 안타까워했다.
나이는 미당이 운보보다 한 살 적지만 두 사람의 생애는 무척 닮았다. 두 사람 모두 일제강점기말에 친일 시비에 휘말렸던 점, 말년까지 식지 않는 열정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여 각각 1000여편의 시와 2만여점의 그림을 남긴 점, 예술가로서 꽤 장수했던 점 등이 공통점이다.
미당은 ‘입에서 나오면 모두 시’라는 달관의 경지를, 운보는 ‘붓만 대면 모두 그림’이란 대가의 경지를 각각 보였다. 미당이 ‘문단의 운보’라면, 운보는 ‘화단의 미당’이었던 셈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