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전장관 '정책혼선' 발언 각계 반응]

  • 입력 2000년 11월 13일 19시 06분


▼경제부처-재계▼

김영호(金泳鎬)전 산업자원부장관의 정책비판에 대해 민간에서는 “정부의 정책수행과정상의 문제점을 매우 잘 지적했다”며 “적절한 대응책까지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반응이다. 경제부처에서는 자신들의 실책이 지적됨에 따라 다소 당황해하는 분위기였다.

정부의 각종 규제에 대해 시달리고 있는 재계는 대체로 “할말을 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4대그룹의 한 임원은 “현 정부 출범이후 국정수행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문제점의 근원을 정곡을 찔러가며 예리하게 지적했다”면서 “요즘 경제가 다시 어려워진 만큼 정부 관계자들이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병욱 경영조세팀장은 “4대부문 구조조정을 할 때 정치적 고려로 인해 경제논리가 뒷전으로 밀렸던 게 사실”이라며 “특히 관료주도형 개혁의 한계를 지적한 대목에 공감이 간다”고 말했다.

현직에 있을 때 이처럼 용기 있게 직언을 했더라면 좀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한 중견그룹 임원은 “김 전장관이 장관으로 일할 때 소신은 있었겠지만 실제로 기업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다”며 “고개가 끄덕여지기는 하지만 본인도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8월까지 장관으로 재직했던 산업자원부의 공무원들은 “장관으로 있을 때부터 정책 집단에 대한 비판을 해왔기 때문에 크게 놀랄 것은 없다”면서도 이번 발언의 파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한 간부는 “김 전장관은 장관으로 산자부를 지휘할 때에도 산업정책적인 측면이 빠진 기업 금융구조조정을 비판했으며 장기적인 국가 청사진의 수립 등에 대해서도 걱정을 했다”면서 “이번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기 경제팀을 이끌고 있는 재정경제부는 김 전장관의 정책결정 문제점 비판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재경부 관계자는 “엊그제만 해도 산자부를 이끌었던 전직 장관이 현 경제팀에 누가 되는 발언을 한 것은 상식 밖의 처사”라며 비난했다.

김 전장관은 자신의 발언이 의외로 파장이 커지자 다소 난감해 하면서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정책결정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산업정책에 대해 학계에서 연구하고 정부부처에서 담당 업무를 맡아본 입장에서 평소에 생각해 왔던 얘기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

가신그룹과 소신 없는 경제관료, 부패 보수세력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는 김영호(金泳鎬)전 산업자원부장관의 비판에 대해 정치권 관계자들도 대체로 “경청할 만한 발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특히 김 전장관의 발언에 대해 “오랜만에 듣는 용기 있는 목소리”라고 평가했다.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13일 이같이 평가하고 “김대통령이 이 같은 충언을 받아들여 무너진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야당으로선 적극적으로 국정에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의 유승민(劉承旼)소장은 김 전장관이 작년 말 정부의 경기부양책을 비판한 점과 관련해 “98년까지는 경기부양책이 필요했으나 이후에도 경기부양책을 끌고 간 정부의 정책은 결국 구조조정노력의 이완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김 전장관의 지적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유소장은 “임기가 2년 넘게 남아있는 만큼 김대통령과 경제팀이 인식의 전환만 한다면 경제위기 극복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며 “그러나 김대통령 주변에 포진한 경제팀의 구성으로 볼 때 과연 이들이 잘해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김 전장관 발언내용은 전반적으로 타당한 지적이고 정부차원에서도 이미 구조조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가신들이 대통령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총리실의 한 간부도 “김 전장관이 그런 발언을 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비판내용이 맞느냐의 여부”라며 “그의 발언 중 80∼90%가 사실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문철·공종식·박원재·이명재기자>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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