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잔류 장기수들 "이념도 중요하지만 가족 버릴수야"

  • 입력 2000년 9월 3일 23시 04분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질 수 없어 남한에 남았습니다. 북으로 간 동지들도 이해할 것입니다.”

남과 북의 기로에서 남한 잔류를 결정한 일부 비전향 장기수들은 이념도 중요하지만 가족을 생각해 남게 됐다고 3일 밝혔다.

올 1월 30세 연하인 김모씨(36)와 결혼한 전북 장수 출신 장기수 양희철씨(66)는 “내게도 부양할 가족이 생겼다는 책임감 때문에 북한으로 가지 않았다”며 “남한에는 형님과 누나 등 가족들이 있는 반면 북쪽에는 직계 가족이 없다”고 말했다.

양씨는 62년 ‘양희철간첩단 사건’으로 검거돼 37년간 복역한 뒤 올 3·1절 특사로 출소했다.

또 장기수 김모씨(73)는 “유일한 피붙이인 아들(25)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남한에 남았다”며 “아들이 결혼하고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부모의 도리이자 인지상정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남한 출신인 김씨는 빨치산 활동을 한 죄로 33년간 복역한 뒤 89년 출소했다.

올 7월 피아노 강사인 이모씨(40)와 결혼한 안학섭씨(70)도 “갓 신혼살림을 시작한 신부를 놔두고 떠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들 장기수는 “동지를 떠나보낸 섭섭함과 가족과 함께 살게 된 안도감이 교차한다”며 “하루 속히 통일이 돼 동지들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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