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D-1]"영감 북에 계신 분께 이 반지 주세요"

  • 입력 2000년 8월 13일 19시 19분


“아버님, 북한의 큰어머님을 만나면 이 한복을 꼭 입혀드리세요.”

13일 경기 안산시 선부동 수정한양아파트 227동 203호. 15일 방북길에 오르는 이태훈(李泰勳·82·전남 신안군 도초면 골안리)씨는 큰딸 대님(大任·39)씨가 건네주는 하얀 모시 저고리와 비취색 치마를 받아들고 50년의 회한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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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이 반지는 내 칠순잔치 때 애들이 해준 것과 똑같은 금반지예요. 북한에 계신 분께 이 반지도 전해주세요.”

남한에서 만나 40년간 희로애락을 같이한 부인 김금심(金錦心·77)씨가 6돈쭝 금반지를 건네자 이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부인의 손을 꼭 잡았다.

황해도 장풍군 장도면이 고향인 이씨가 북한에 부인 이정숙씨(77)와 딸 재온씨(55)를 남겨두고 남한으로 내려온 것은 1950년 7월.

당시 부인과 함께 농사를 짓던 그는 인민군 동원령을 받고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경기 파주에서 유엔군에 붙잡혀 거제도 포로수용소 등에 2년간 수감된 뒤 다시 국군으로 참전했다. 남북을 향해 총부리를 바꿔 겨눠야 했던 드문 인생역정이었다.

제대 후 전남 신안으로 내려가 염전 등에서 일하며 힘들게 살다 1960년 김씨와 재혼해 1남2녀를 낳았다. 이씨 자녀들은 아버지가 이번에 이산가족 방북신청을 내기 전까지 북한에 혈육이 있는지 조차 까맣게 몰랐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황해도가 아버님의 고향인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고향에 가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에 방북신청을 권유하자 아버님께서 북한에 남겨둔 가족 얘기를 처음 꺼내시더군요.”

큰딸과 장남은 ‘큰어머니’께 드릴 모시 한복과 금반지를 마련했고 둘째딸은 북한의 ‘언니’도 가족이 많을 거라며 티셔츠와 잠바 속옷 양말 등을 준비했다. 또 북한의 가족이 궁금해 할 것 같아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어 두 개의 액자에 담아 방북 가방에 넣어드렸다.

큰 딸 대님씨는 “안산으로 올라오신 뒤 잠을 못이룬 채 북쪽을 향해 상념에 잠기시는 것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15일이면 북한으로 떠나는 이태훈씨. 북한의 아내와 딸을 만나면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할지 몰라 틈틈이 메모까지 해뒀다. 그는 남쪽 자녀들이 챙겨준 선물 보따리를 품에 안고 13일 방북 이산가족 집결지인 서울 워커힐호텔로 향했다.

<오산〓정승호기자>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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