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화제]광주 강제필할머니, 세번의 '기적'

  • 입력 2000년 7월 28일 18시 33분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세 번이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평남 순천 출신인 강제필씨(73·여·광주 북구 임동)는 27일 6·25전쟁때 헤어진 조카 강순자씨(62·여)가 북한에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하나님’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강할머니는 전쟁중 딸만 데리고 월남했다가 약 3년 후 남편 현경식씨(98년 사망)와 극적으로 상봉하고 83년엔 KBS의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통해 둘째 언니 제희씨(78)를 만난 데 이어 이번엔 조카의 생존사실까지 확인한 것.

그는 “다른 이산가족들은 혈육의 생사조차 모르고 눈을 감는 마당에 또다시 이런 행운이 올줄 몰랐다”며 “제문오빠(생존했다면 90세)는 나이가 많아 돌아가셨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조카에게 연락이 닿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감격해 했다.

평범한 농민 부모의 1남3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강할머니의 ‘기구한 운명’은 17세에 시집가 딸(55)이 다섯살 때 6·25가 터지면서 시작됐다.

1950년 11월 말경 평남 안주군 웅곡면에서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가던 시댁 근방에까지 중공군 대열이 밀어 닥쳤다.

그는 “당시 남편이 잠깐 마을 밖으로 나갔는데 시동생이 달려와 ‘중공군이 들이닥쳐 옆 마을 사람들은 맨발로 도망갔다’고 전해 부랴부랴 딸을 업고 마을 뒷산으로 숨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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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빨리 도망가야 한다”는 이웃 사람들의 말에 옷가지 하나, 식량 한줌 챙기지 못한 채 그 길로 남하해 두달여 동안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끝에 경북 김천에 도착, 2년간을 지냈다.

남편과의 상봉은 53년 7월경 충북 보은에서 이뤄졌다. 보은에 신천 강씨가 많이 산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가 수소문 끝에 이곳에 들른 남편과 기적같이 만났다. 그후 광주에 정착한 부부는 막노동판 등을 전전하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2남 1녀를 더 낳아 비교적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강할머니에겐 행운이 또 찾아왔다. 83년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든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통해 부부가 함께 월남해 서울에 정착한 언니 제희씨를 만났다. 그는 “이제 조카를 만나 꿈에 그리던 고향을 둘러본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강할머니는 “이번 방북신청서에 제문오빠의 다섯 자녀와 큰동서(장숙영) 가족, 시누이(현복식) 등 모두 9명의 이름을 적어 냈는데 조카 한 명의 생존만 확인됐다”며 “나머지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고 방북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광주〓김권기자>goqu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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