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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4월 21일 20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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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접촉에 임하는 자세는….
“새 세기 첫 민족적 대사인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통일철학과 평화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대북 포용정책의 참뜻을 북측에 알리겠다. 남북관계는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 우승하는 윈-윈(Win-Win) 게임이다.”
―이번 접촉서 논의할 문제는.
“대통령이 ‘베를린선언’에서 밝힌 정부 간 경협, 평화체제 정착,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 남북 간 대화창구 상설화 등 4대 과제가 중심이다. 북측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도울 것은 돕겠다.”
―사회간접자본 지원 문제도 논의하나.
“북의 입장을 타진하고 우리 입장을 전달하자는 게 1차 접촉이기 때문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정상회담의 커다란 틀에서 포괄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줄 것은 준다고 했는데 신축적 상호주의인가.
“우리 정부 입장은 비동시, 비대칭, 비등가의 상호주의다. 산술적 국제거래 개념으로 할 필요가 없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 것 같은가.
“과거 냉전시대의 협상태도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으로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했었다. 그러나 남북정상이 회담을 결심했다. 북한 매스컴을 보아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94년에 합의된 절차도 준용되나.
“준용할 것은 준용하지만 새롭게 논의할 것은 새로 할 것이다.”
▼北측 대표단 프로필▼
▽양영식(梁榮植·59)통일부차관〓이번 정상회담의 전략수립과 실무협상을 모두 담당하는 준비과정의 주역. 72년 통일부 정세분석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통일부 대변인과 통일정책실장, 남북회담 상근위원, 민족통일연구원장 등을 역임.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강조하는 그는 공세적인 북한측 대표단을 만날 경우 당황할 정도로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원만한 성품이라는 평.
▽서영교(徐英敎·52)통일부국장〓현 정부 들어 남북대화의 막전막후 모두에 자리해온 회담전문가. 98, 99년에 열린 남북차관급회담에도 대표로 참석.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열렸던 90∼92년 남북고위급회담의 수행원으로도 활동한 그는 북한측 논리와 회담전략에 밝다는 평. 뛰어난 순발력으로 북한측의 예상외 발언 등에 대한 ‘돌발사태 처리반’의 역할을 도맡아 왔다.
▽손인교(孫仁敎·55)통일부남북회담사무국장〓70년대초부터 남북대화에 참여해온 베테랑. 98년 남북차관급회담 대표로 참석했던 그는 99년 김보현(金保鉉)총리특보 등과 함께 비밀협상의 주역을 맡았다. 남북회담사무국 운영부장, 연락부장, 회담협력관에 이어 통일부 정보분석관 등을 역임한 그는 과거 회담사를 꿰뚫고 있다.어 종종 북한측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는 ‘악역’을 맡아 왔다.
▼北측 대표단 프로필▼
▽김영성(57·수석)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회참사〓90년대 초반부터 남북대화에 얼굴을 내비쳤다. 92년1월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에 따른 3개 분과위원회의 구성 운영 및 남북연락사무소 설치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한 대표 접촉에 나선 회담꾼. 96년 4월에는 미국 버클리대 한국학 위원회가 주최한 5차 ‘코리아평화통일심포지엄’에 참석해 연방제 통일을 강조하기도 했다.
▽최성익(崔成益·62)조평통서기국부장〓85년5월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에 수행했다. 9월에는 예술단 및 고향방문단의 서울 방문, 12월의 10차 남북적십자회담 수행 등 서울을 몇차례 방문했다. 89년2월부터는 남북고위당국자 예비 회담의 북측 대표를 맡고 90년9월부터 남북고위급회담을 7차례 수행하는 등 회담 베테랑. 전형적인 ‘싸움닭’으로 알려진 인물.
▽권민(權珉·44)아태평화위참사〓남북 민간 교류를 위해 베이징을 찾는 남측인사들의 창구 역할을 해왔다. 그는 98년7월 슈퍼옥수수 박사인 김순권(金順權)경북대교수의 방북 때 안내를 맡기도했다.하는 등 주로 민간 차원 접촉에 나섰다. 지난해 남북차관급 회담에 대표로 참석하기도 한 그는 북한의이 ‘1세대 회담꾼’들에 이어 육성하는 ‘차세대 회담꾼’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