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평화재단 南北포럼]안병준/평화·공존의 큰길 열자

  • 입력 2000년 4월 11일 19시 50분


6월 평양에서 열릴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 간 정상회담은 실로 역사의 과정을 바꿀 수 있는 큰 사건이다. 우리는 이 회담이 남북간에 실질적인 평화협력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이 숙원을 성취하기 위해 정부는 국민적 합의와 주변 열강의 지지를 지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 회담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이 전쟁과 대결을 겪어온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회담이 열리는 자체가 매우 획기적인 것이다. 이로 인해 ‘냉전의 최후 빙산’으로 불려온 이 땅에도 해빙의 봄이 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상징적 행사에 지나치게 연연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제부터 우리도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자세로 의연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문제 우리손으로 해결▼

돌이켜 보면 한반도 문제는 그동안 우리의 손을 벗어나 있었다. 1992년부터 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북한문제는 점차 ‘국제화’됐고 1994년 제네바합의도 미-북 간에 조인됐다. 1997년에 개시된 4자회담에서도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고집했다. 1998년에 미사일문제가 부상하자 이 문제도 미-북 및 일-북회담에서 집중적으로 취급됐다.

한편 금년 초부터 북한은 이탈리아 호주 캐나다 필리핀과 수교협상을 진행하면서 한국과의 대화는 외면했다. 이제야 북한이 남한과의 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한반도 문제가 남북 당사자들간에 ‘한반도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을 달성하는 과업은 남북당국 간 합의를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한반도화’는 강대국들의 호응을 받는 ‘국제화’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北, 주변정세에 적응 노력▼

차제에 우리는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된 이유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분명히 북한은 한국의 포용정책과 김대통령이 제시한 베를린선언에 긍정적으로 호응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종용해온 미 일 중 러의 역할도 도움이 되었다. 북한도 지금부터는 남한과 대화해야만 대미 대일 관계개선과 중국 및 러시아의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보기술과 금융의 세계화 추세 속에서 명실공히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에서 국내 여론에 밀려 대북정책이 강경노선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므로 북한은 남한과의 협력을 계속 피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일방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남북대화를 조용하게 권유해 왔다. 이렇게 급변하고 있는 주변 정세에 북한은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실현될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우리는 평화 협력 및 화해를 실현하겠다는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4강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한반도에서 전쟁과 대량살상무기를 억제하고 양측은 진실로 평화공존을 이루는데 합의해야 할 것이다. 1992년에 양측이 이미 합의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행하면 이 원칙은 실천될 수 있다. 동시에 남북은 경제협력위원회를 가동해 상부상조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베를린 선언에서 약속한 바와 같이 북한에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농업구조 개선을 추진하는 것도 구체화돼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가장 인도주의적인 화해조치로서 제1세대가 타계하기 전에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덜어주는 방법도 행동으로 옮겨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주고받는 포괄적 협상은 북측이 평화를 보장하고 남측이 경협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하겠다.

▼오해없도록 준비 투명하게▼

이처럼 큰 의제들을 설정하는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준비하는 방법이다. 이 회담이 선거전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 와중에 발표됐으므로 앞으로 이 문제는 불가피하게 정치쟁점화 할 것이다. 이것을 최대한 지양하기 위해 정부는 회담준비 과정을 투명하고도 책임성 있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미 일과 긴밀한 정책조정을 실시해야 하며 중 러와의 협의도 등한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상회담을 기획하고 협상을 담당하는 실무자들도 중지를 모으고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국가관리 차원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회담을 준비해야 한다. 정상들은 실무자 및 전문가들이 체계적 협상을 통해 사전합의를 이룬 것을 최종 확인할 때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안병준<연세대교수·21세기평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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