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비 침투]「햇볕」거둘수도…밀어붙일수도 없고…

  • 입력 1998년 7월 13일 19시 49분


북한의 잇단 동해안 침투사건으로 인해 정부의 대북(對北) 햇볕정책에 적지 않은 전술적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13일 북한을 포용하는 햇볕정책의 기조는 유지하되 속도는 조절하겠다고 밝혔다. 대북정책은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일관성있게 추진해야 하지만 부분전술은 상황에 따라 완급과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정세현(丁世鉉)통일부차관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예정된 소풍을 못가게 되는 게 당연하다”며 “이번 사건 해결에 북한이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경우 현재 진행중인 남북경협이 불가피하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는 지난달 22일 북한 잠수정 사건이 터졌을 때 정부가 정주영(鄭周永)현대명예회장의 방북으로 모처럼 조성된 남북 화해국면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 북한에 대한 대응에 신중을 기했던 것과는 대비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5일 새정부 출범 후 첫 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를 소집키로 한 것도 정부가 이번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및 통일안보관련 장관들이 모두 참석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는 국가안위에 관한 정책을 논의하는 최고 정책결정회의여서 여간해서는 열리지 않는다. 정부는 통상적으로 대통령과 총리가 빠진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통해 중요 대북정책을 논의해 왔다.

정부의 이같은 강경대응은 햇볕정책이 결코 일방적인 시혜나 양보가 아니라는 점을 북한에 분명히 인식시키고 이에 대한 여론의 비판과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를 깔고 있다.

정부는 특히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이 확산되는 데 대해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정부가 북한의 침투를 매번 민간인이 신고할 때까지 알지도 못했고 북한으로부터 재발방지 약속은 커녕 제대로 사과조차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여론의 질타가 큰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군 일각에서도 북한의 도발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정부는 “북한이 계속 도발하는 것은 햇볕정책에 두려움을 느끼고 한국정부가 강경한 대북정책을 취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라며 역으로 햇볕정책의 적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을 화해 협력의 마당으로 나오도록 유도할 수 있는 마땅한 지렛대가 없는데다가 햇볕론마저 안팎의 공격을 받고 있어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에 정부의 고민이 있다.

〈한기흥기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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