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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6월 7일 20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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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새벽 특별기에서 기내 기자간담회를 가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과거 망명시절 미국친구들을 회상하면서 한 말이다.
김대통령의 미국행은 이번이 열번째로 두번은 망명길이었다. 72년 유신선포 후 1차 망명 때 당시 에드워드 케네디(현 민주당 상원의원)의 도움으로 존 케리, 클레이번 펠, 폴 사이먼, 앨런 크랜스톤, 토머스 포글리에타, 에드 페이안, 토니 홀 등 민주당출신 전현직 상하원의원들과 교분을 맺었다.
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뒤 미국 조야의 구명운동으로 82년 12월 2차 망명길에 올라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설립한 김대통령은 이때 교제 폭을 더욱 넓혀 인권문제연구소의 ‘뉴스레터’를 수신하는 미국인이 한때 4천여명에 이르렀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첫 만남은 미국 예비선거기간인 92년 4월로 당시 섹스 스캔들로 고전중이던 클린턴은 김대통령에게 “나와의 만남이 손해가 될 수도 있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90년대 이후 보수파와의 교분을 확대해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 짐 리치 하원금융위원장,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 등이 후원자로 추가됐다.
김대통령의 미국내 학계인맥은 하버드대 출신이 주류.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데렉 복 전 하버드대총장, 에드 베이커 하버드대옌칭연구소장, 제임스 코헨 미국외교협회장 등은 김대통령이 하버드대에서 공부할 때 사귄 사람들이다. 재계 인물로는 세계적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회장이 대표적이다.
〈임채청기자〉cclim@donga.com